구형의견서에서 GDP와 매출 혼동한 특검… "잘못된 통계 확인 못했다"

논란 확산되는 특검 구형

오류·추측 많은 구형의견서·공소장

삼성그룹 매출이 GDP의 18%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2%안팎

사실보다 추측성 표현 많아
법조계 "법리적 입증보다 감성적 여론에 호소" 비판

경제계 "반기업 정서에 기대 '삼성=나쁜 기업'으로 몰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 5명에 대한 마지막 공판이 열린 지난 7일 박영수 특별검사가 법정에 나와 직접 읽은 구형의견서와 특검의 공소장이 법조계와 경제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법리적 쟁점을 다투기보다 특검의 주관적 가치관 등을 담았거나 여론에 호소하는 식의 표현이 다수 포함돼서다. 명백하게 잘못된 통계가 인용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특검의 논고문에는 “(삼성은) 정경유착의 고리가 다른 재벌보다 앞서서, 강하게 형성…” “범행 당시부터 범죄 숨기기 위한 수단 마련…” “국민주권의 원칙과 경제민주화라고 하는 헌법적 가치를 크게 훼손…” 등 혐의와 무관한 내용을 여럿 적시했다.

공판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직접 증거의 유무 △제3자 뇌물죄 적용 법리 문제 △이 부회장의 개입 증거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그러면서 “공정한 평가와 처벌만이 국격을 높이고, 경제 성장과 국민화합의 든든한 발판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는 감성적 표현으로 마무리했다.

논고문에서 일부 통계를 잘못 인용하기도 했다. 박 특검은 논고문에서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18%를 차지하고 있는 1등 기업 삼성그룹이 국가와 국민을 위하기보다는, 그룹 총수만을 위한 기업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수치는 명백한 오류다. GDP는 한 나라 안에서 발생한 부가가치 총액을 뜻한다. 가령 1000원어치 물건을 사서 1500원에 팔았다면 매출은 1500원이다. 하지만 부가가치는 500원이다. 실제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연간 부가가치는 GDP의 2% 안팎 수준이다. 2015년에는 2.3% 정도였다.삼성의 한 관계자는 “특검 계산방식으로 하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매출을 다 더해도 GDP의 100%가 넘는다”며 “수많은 검사가 이 같은 오류를 놓친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경제계 일각에선 상식적으로 박 특검팀이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의도적으로 이 같은 수치를 인용했다는 것. 기업 매출을 GDP로 치환하는 화법은 일부 시민단체에서 대기업을 비판할 때 자주 활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특검 관계자는 “잘못된 통계가 인용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삼성이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크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출처는 밝히지 않았다.

특검은 또 논고문에서 “삼성으로서는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의 갑작스러운 와병으로 인해 피고인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와 삼성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의 안정적 확보가 시급한 지상과제가 됐다”고 적었다. 특검은 이 논리를 바탕으로 삼성 계열사의 대정부 움직임을 모두 이 부회장 개인의 지배력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정부와 접촉하는 기업들의 복잡한 현안을 지나치게 단선적으로 재단한 것”이라며 “기업 활동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특검, 관심법에 의존?

공소장 문제는 재판 초기부터 논란이 됐다. 피고인의 마음을 추측해 사실관계를 연결하는 내용이 곳곳에 있어서다. 특검이 이 부회장 공소장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피고인 이재용을 도와주는 대가로 최순실의 승마훈련을 위한 경제적 지원을 해달라고 요구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적은 게 대표적이다.

‘일반적 상식’을 특검이 정의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지지 여부가 이재용 승계작업 성공 여부에 큰 변수가 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라고 적시한 경우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 관계를 ‘뇌물 수수’로 엮어넣기 위해 자신들의 주관적 판단을 중간 연결논리로 사용한 것이다.없던 대화를 있는 것처럼 쓴 부분도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정유라를 잘 지원해주어 고맙고, 앞으로도 계속 잘 지원해달라”고 말했다며 큰따옴표를 사용한 부분이다. 공판 과정에서 이 같은 대화가 오갔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생각을 일방적으로 추론하는 ‘관심법’은 국가보안법으로 간첩을 처벌할 때 쓰는 공소장 방식”이라며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와 여론에 대한 호소로 범죄요건을 구성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