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이주비 대출…재건축 조합원 "돈 없어 이사도 못갈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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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대책' 1주일“하루에 이주비 문의 전화만 250여 통이 오고, 직접 방문해 묻는 조합원도 100명이 넘습니다. 당장 몇 달 뒤면 짐을 싸야 하는데 자금계획이 틀어지니 다들 비상입니다. 이주비를 받아 기존 대출이나 전세보증금을 갚고 나면 정작 이사할 돈도 남지 않는데 매도할 길도 막혀 답답한 노릇입니다.”(권상득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조합 상근이사)
강남·송파·서초 등 서울 11개구, 대출한도 40% 이하로 강화
투기 관계없는 1주택자도 피해…"전매 금지로 매도도 불가능" 분통
개포주공1·방배 경남아파트…조합원 문의 전화만 하루 수백통
‘8·2 부동산대책’으로 서울 재건축·재개발조합원 이주비 대출이 까다로워지면서 개포주공1단지, 방배 경남아파트, 방배5구역 등 이주를 앞둔 정비사업구역에 비상이 걸렸다. 조합원의 기존 대출·전세보증금 상환, 이주 등의 계획이 틀어지면서 관련 기관과 조합에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이주비 아예 못 받을 수도
이주비 대출은 재건축·재개발구역 철거가 시작될 때 소유자들이 대체 거주지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집단대출이다. 기존엔 담보인정비율(LTV) 60%(기본 이주비 30%, 추가 이주비 30%)를 적용받았다. 8·2 대책으로 대출 한도가 40%로 크게 줄었다. 다주택자는 이마저도 받기 어렵게 됐다. 투기지역 내 대출이 가구당 한 건으로 제한돼서다. 서울 강남 송파 서초 등 11개 구에서 주택담보대출을 한 건이라도 보유한 이들은 다른 대출을 받을 수 없다.이주를 앞둔 재건축·재개발구역 조합원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통상 이주비는 기존 대출을 갚거나,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상환하는 용도로 많이 쓰인다. 이주비를 아예 못 받게 된 다주택자는 자금상환 길이 막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비사업지에 주택을 보유한 사람은 다른 주택을 한 가구 이상 보유한 경우가 많다”며 “대책 발표 이후 이주금 대출 관련 문의가 수백 통 걸려와서 일상 업무를 보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시공사들은 사업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좌불안석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전례가 없던 일이라 대응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며 “당장은 건설사가 자체 보증을 서서 집단대출을 알선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지만, 조합원이 많아 금액이 큰 경우 이마저도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라고 털어놨다.◆단독주택 정비사업 직격탄
이주를 앞둔 단지에서도 간발의 차로 희비가 갈렸다. 다음달부터 이주를 시작하는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4단지는 지난달 12~29일 네 개 시중은행과 대출협의를 마무리지어 8·2 대책과 관계 없이 기존 LTV 60%를 적용해 이주비를 대출할 수 있게 됐다.
반면 이르면 연말부터 이주 예정인 개포주공1단지는 은행권과 대출 협의 중인 상황에서 규제 대상이 됐다. 많아봐야 LTV 40%(무주택자 등)를 적용받는다. 전용면적 43㎡는 LTV 60%를 적용하면 이주비를 4억8000여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었지만, 이번 대책으로 3억3000만원까지만 대출받을 수 있게 됐다. 권 이사는 “자금계획이 어그러진 사람이 많다”며 “사업이 늦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오는 10월 이주 예정인 방배 경남아파트 조합도 고민에 빠졌다. 대책 발표 전 대출은행과 이자율을 미리 확정했지만, 강화된 대출규제를 적용받기 때문이다. 조합 관계자는 “이사갈 집을 먼저 구해 전세대출을 우선 받은 뒤 이주비를 받는 등 우회 대출 방법을 고민 중”이라며 “1순위로 은행 대출을 받고, 후순위로 저축은행 대출을 알선하는 방법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노후 단독주택 위주인 재개발·재건축구역 주택 보유자는 특히 타격이 크다. 투기지역에선 재개발 이주비 대출에도 LTV 40%를 적용한다. 재개발 이주비는 실거래가가 아니라 종전 자산 평가금액이 기준이어서 대출 가능 금액이 낮다. 방배5구역 조합 관계자는 “단독주택 소유주는 40~50년간 산 사람이 많고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고 나면 이사 갈 돈도 모자라던 참”이라며 “이제는 이주비가 모자라 세도 못 빼주게 됐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주비가 모자란 사람들이 주택을 팔고 나갈 수도 없어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8·2 대책으로 재건축·재개발단지 매매가 사실상 막혀서다.
선한결/설지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