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전 산업 본사-대리점 '불공정 실태' 첫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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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점 70만 곳 대상공정거래위원회가 전국 70만여 곳에 달하는 모든 산업 분야 대리점을 대상으로 불공정 실태조사에 나선다. 본사에서 물량 밀어내기를 비롯해 각종 불공정행위를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공정위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내년 초 본사-대리점 간 불공정관행 근절 종합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본사 거래금액·수수료율 등 점검…대리점은 '본사 갑질' 여부도 조사
공정위는 전국 본사 4800여 곳과 대리점 70만여 곳을 대상으로 이번주부터 거래 실태조사를 한다고 9일 발표했다. 프랜차이즈뿐 아니라 제조 유통 등 모든 산업 분야가 대상이다. 전 산업에 걸친 대리점 실태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공정위는 10일부터 다음달까지는 본사를 대상으로, 9월부터 12월까지는 대리점과 대리점단체를 상대로 서면 설문조사를 할 예정이다. 김문식 공정위 시장감시국 제조업감시과장은 “본사-대리점 간 불공정거래 행위 근절을 위한 법 집행, 정책 마련, 제도개선 등에 활용할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일부 업종이 아니라 국내 전반의 대리점 거래 실태를 상세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그동안 불공정 거래가 문제가 된 특정 업종에 한해 실태조사를 벌여 왔다. 2013년 남양유업의 대리점에 대한 ‘물량 밀어내기’가 사회 문제가 되면서 유제품 주류 라면 자동차 등 8개 업종의 23개 본사와 1150개 대리점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게 대표적이다.
지방자치단체 중에서는 서울시가 2015년 자동차 음료 위생용품 아웃도어 등 9개 업종의 33개 본사와 1864개 대리점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했다. 이번처럼 특정 업종과 지자체 수준을 넘어 전국에 걸쳐 모든 산업을 대상으로 조사하기는 처음이다.물론 ‘남양유업 사태’ 이후 2015년 12월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리점법)이 제정돼 1년 유예를 두고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되고 있긴 하다. 이 법에서는 본사가 대리점에 상품 또는 용역을 강매하거나 거래 목표치를 강제하는 등 불공정 행위를 하면 과징금을 부과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대리점 종류가 다양하고 수가 워낙 많아 거래 실태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고, 이에 따라 법 집행에 어려움이 있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다.
공정위가 전 산업에 걸쳐 본사와 대리점 간 불공정 거래 여부를 전수조사하기로 한 배경이다. 공정위는 이번 전수조사에서 본사에 대해서는 대리점별 연간 거래 금액, 대리점별 위탁수수료율, 유통 경로별 거래 비중, 반품 조건, 계약 기간, 위탁수수료 등을 점검한다. 대리점에 대해서는 서면계약서 수령 여부, 영업지역 설정 여부, 물량 밀어내기 등 불공정 행위 경험 유무, 주요 애로사항 등을 조사한다. 대리점 단체에 대해서도 단체의 역할, 본사와의 거래 조건 협상 여부 및 내용 등을 수집할 계획이다.
공정위는 김상조 위원장 취임 이후 프랜차이즈, 하도급, 대규모 유통업, 대리점 등 네 개 영역에서 ‘갑을(甲乙) 문제’ 해소를 표방한 정책 추진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에는 프랜차이즈 본사의 가맹점에 대한 마진 공개와 표준가맹계약서 개정 등을 담은 ‘가맹 분야 불공정관행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10일에는 ‘대형 유통업체와 중소 납품업체 간 거래관행 개선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추가로 하도급 관련 종합대책도 마련하기로 했다.‘갑질’에 대한 제재도 강화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달 본죽의 프랜차이즈 본사인 본아이에프의 가맹사업법 위반 행위에 대한 처분을 재심의해 4600만원이던 과징금 부과액을 6000만원으로 30% 상향 조정했다. 통상 과징금은 최종 의결 과정에서 법 위반의 중대성, 감경 요소 반영 등으로 소폭 조정되는 일이 있지만 이번처럼 큰 폭으로 늘어난 경우는 찾기 힘들다.
공정위는 또 같은 달 하도급 대금을 부당하게 깎은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화신에 대해 이례적으로 검찰 고발 조치했다. 상습 법 위반 업체가 아닌, 하도급법을 단순 위반한 중견기업에 고발 결정을 내린 이례적인 경우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