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해수면 상승 대비할 시간, 반세기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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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습격1만5000년 전 해수면은 오늘날보다 120m 낮았다. 오랫동안 지속된 빙하기가 끝난 이때부터 급속하게 해빙이 시작됐다. 빙하가 녹은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해수면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 최파일 옮김 / 미지북스 / 360쪽│1만원5000원
숨 가쁘게 차오르던 해수면은 기원전 4000년께 사실상 상승을 멈췄다. 이때부터 인류는 문명을 건설했고,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긴 싸움을 시작했다. 나일강 삼각주 같은 비옥한 저지대와 해안 평야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해상무역에 기반한 교역이 팽창하면서 점점 더 많은 인구가 해안지역에 정착했다.잠잠하던 해수면은 19세기 산업혁명 때부터 상승을 재개했다. 지구 온난화로 남극과 그린란드의 빙하가 다시 녹기 시작한 것이다. 1880년 이후 해수면은 약 20㎝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세기에 2m 상승할 것으로 내다본다.
고고학자인 브라이언 페이건 미국 UC샌타바버라 명예교수는 《바다의 습격》에서 해수면 상승이 가져올 인류의 위기를 경고하며 즉각적인 대응책 마련을 촉구한다.
그는 이번 세기의 해수면 상승은 1만5000년 전 일어난 해수면 상승과 차원이 다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한다. 8000년 전까지만 해도 불과 수만 명이 바다의 위협에 노출돼 있었다. 오늘날에는 수천만 명이 해수면 몇m 위 도시와 마을에 북적이며 살고 있다.저자는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해수면 상승의 역사를 소개한다. 이로 인한 인간 생활의 변화와 도전을 보여준다. 영국 옆 북해는 빙하기까지 육지였다. 해수면 상승에 따라 바닷물에 포위되며 섬이 됐다가 물결 아래로 사라졌다. 이곳에 살던 소수의 사람들은 육지로 거주지를 옮겼다. 비슷한 시기 우크라이나 남부의 흑해는 호수였다. 해수면 상승의 여파로 지중해 바닷물이 급격히 쏟아져 들어오면서 호수는 순식간에 ‘짠물’이 됐다. 농경지는 파괴되고 물고기가 떼죽음을 맞았다.
오늘날에도 해수면 상승의 직접적 위협을 받는 지역이 많다. 인도양의 몰디브, 남태평양의 투발루와 키리바티 등 작은 섬나라들은 해수면 상승으로 수십 년 안에 지도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키리바티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는 지역이 2050년께까지 침수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웃 호주 정부는 이들 환경난민을 받아들일 계획을 이미 짜고 있다. 관광객의 낙원인 몰디브는 해발고도가 2.4m에 불과하다. 2004년 쓰나미로 82명이 사망하고 1만2000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방글라데시는 벵골만 인근에 사는 4000만 명이 이번 세기 안에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
2005년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해안 도시가 폭풍우와 홍수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 극명한 사례 중 하나다. 뉴올리언스의 80%가 물에 잠겼고, 곳에 따라 수심은 4.6m에 달했다. 공식 사망자는 약 1500명에 달하고 도시 곳곳에서 약탈과 폭력이 자행됐다.바다의 습격에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해안가를 떠나거나 제방을 쌓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다. 늪지와 습지, 맹그로브는 오랫동안 자연 방벽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자연적 보호 수단은 사라졌고 네덜란드, 이탈리아 베네치아 등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인공 방벽을 건설하고 있다. 저자는 “해수면 상승과 같은 환경 변화의 막다른 골목에 처할 시간이 반세기 또는 길어봐야 2세기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며 “거대한 재앙에 맞설 창의적 해결책을 찾기 위한 세계적 관심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