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재판에 발목 잡힌 삼성증권… 금감원 '초대형 IB' 인가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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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주 적격성' 충족 못해 신규 업무 진출 제한
업계 "업무와 직접적 상관없는데…지나친 해석"
삼성증권, 초대형 IB 진출 1년 이상 늦춰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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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계열사 경영 차질 첫 사례삼성증권은 10일 “대주주의 재판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금융당국에 신청한 발행어음 사업 인가 심사가 보류됐다”고 공시했다. 삼성증권의 신규 업무 진출 좌절은 이 부회장 재판으로 삼성 계열사가 경영에 실질적인 차질을 빚은 첫 사례다. 삼성증권은 지난달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KB증권, 한국투자증권과 함께 ‘초대형 IB 지정 및 단기금융업 인가’ 신청서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했다.
초대형 IB는 금융당국이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육성하기 위해 올해부터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증권사에 허용하기로 한 사업이다. 초대형 IB로서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은 증권사는 자기자본의 200% 한도에서 어음(발행어음)을 찍어 조달한 돈으로 투자에 나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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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기대한 증권사들의 모험자본 공급 규모도 당초 기대에 못 미칠 수밖에 없다. 앞서 삼성증권과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KB증권 한국투자증권은 총 투자 한도 47조원(5개사 자기자본 23조6000억원의 두 배) 가운데 23%가량인 11조원을 연내 투입하고 2019년엔 잔액을 35조원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금융당국에 전달했다.
삼성증권은 금감원의 대주주 관련 해석이 당혹스럽다며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이 증권사 관계자는 “삼성증권 최대주주는 법인인 삼성생명”이라며 “이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이 극히 적은데도 개인을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자본시장법상 대주주 규정에 따라 이 부회장이 삼성증권 대주주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자본시장법은 최대주주가 법인인 경우 법인의 중요한 경영사항에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도 대주주에 포함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금감원은 이 부회장의 지분율이 낮기는 하지만 삼성생명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판단했다.삼성증권을 제외한 나머지 4개사의 초대형 IB 업무 인가 심사는 당초 계획대로 진행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한국투자증권 등 대주주 결격 사유가 있는 다른 증권사는 이미 기관 조치가 끝났기 때문에 심사를 보류하지 않았다”며 “심사에는 3개월이 걸려 이르면 10월 초 첫 초대형 IB가 탄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소 1년간 심사 보류
삼성증권의 초대형 IB 진출은 최소 1년 이상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 부회장의 1심 선고공판은 오는 25일 열린다. 1심에서 이 부회장이 금고형보다 낮은 형을 받는다고 해도 2심과 3심을 거쳐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나오려면 1년가량은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3심(대법원)에서 금고형보다 낮은 형벌이 결정되면 금감원의 발행어음 업무 인가 심사도 재개된다.
이 부회장에게 금고형 이상의 형이 선고되면 형 집행이 끝난 5년 후부터 삼성증권이 신규 업무를 할 수 있다. 집행유예가 선고된다면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 시점부터 발행어음 업무 인가 심사를 한다.
증권업계에서는 신규 업무와 관련 없는 대주주 적격성을 주요 심사 근거로 삼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초대형 IB 후보군 가운데 한국투자증권은 대주주인 한국금융지주 자회사 코너스톤PE가 2015년 파산했다는 이유로 대주주 적격성에 흠집이 났다. 한 증권사 임원은 “금융당국이 대주주 요건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다”며 “초대형 IB 육성이라는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려면 유연하게 인가 심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초대형 투자은행(IB)자기자본 4조원 이상인 증권사에 발행어음 업무 등을 허용해 골드만삭스와 같은 대형 증권사로 육성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도입됐다. 증권사들은 은행과 달리 자금 조달에 제한이 있지만 초대형 IB가 되면 각사 자기자본의 최대 두 배만큼 어음(발행어음)을 찍어 조달한 돈으로 투자할 수 있다.
나수지/이태호/김우섭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