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무대만 서면 작아지는 박인비
입력
수정
지면A27
KLPGA 제주삼다수마스터스…박인비 또 '무관 징크스' 못 깨18전 무관(無冠). ‘골든 슬래머’ 박인비(29·KB금융그룹·사진)의 지독한 징크스다. 이번에도 국내 대회 첫승을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됐다.
◆털어내지 못한 골프여제의 징크스박인비는 13일 제주 오라CC(파72·6545야드)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제주 삼다수마스터스 마지막 날 3라운드에서 버디는 1개밖에 잡지 못한 채 보기 4개와 더블보기 1개를 범해 5오버파 77타를 적어냈다. 최종 합계 3오버파 219타로 62명의 선수 가운데 최하위권인 공동 56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1라운드 이븐파, 2라운드 2언더파를 칠 때까지만 해도 첫 국내 대회 우승 가능성은 남아 있어 보였다. 다만 무더기 버디 사냥이 필요했다. 하지만 전반 13번·14번홀에서 두 홀 연속 보기가 나오는 등 초반부터 삐걱거렸다. 15번홀 버디로 한 타를 덜어냈지만 이후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마음이 급했던 탓인지 후반 막판 7번홀 보기, 8번홀 더블보기, 9번홀 보기를 쏟아내며 속절없이 무너졌다.
박인비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18승(메이저 7승)에 올림픽 금메달까지 딴 ‘골든 커리어 그랜드 슬래머'다. 하지만 유독 국내 대회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초청 선수 자격으로 지난 9년간 17개 국내 대회에 출전했지만 준우승만 여섯 번 했을 뿐이다. 박인비는 경기를 마친 뒤 인터뷰에서 “1·2라운드에서와 달리 마지막 라운드에서 샷이 너무 안 됐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이날 경기가 끝난 뒤 제주 골프 꿈나무 육성기금 2000만원을 기부했다.◆오랜 부진 털어낸 고진영의 컴백
우승 트로피는 고진영(22·하이트진로)에게 돌아갔다. 보기 없이 버디만 6개를 쓸어담았다. 최종합계 17언더파 199타. 2위 김해림(27·롯데)을 4타 차로 따돌린 완벽한 우승이다. 시즌 첫승이자 통산 8승.
2014년 투어에 데뷔한 고진영은 그해 1승, 2015년 3승, 지난해 3승을 수확했다. 상금 1억2000만원을 가져간 고진영은 시즌 총상금을 2억5380만원으로 늘렸다. 상금 랭킹도 20위에서 11위로 껑충 뛰었다.고진영은 올 시즌 미국 무대로 진출한 박성현(24·KEB하나은행)의 뒤를 이을 최강자로 꼽혀왔다. 하지만 올 들어선 특별함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 앞서 11개 대회에 출전해 톱10에 여섯 번 들었지만 우승권과는 거리가 있었다. 최고 성적이 지난달 열린 문영퀸즈파크챔피언십의 공동 4위였다.
고진영은 그동안 대회 출전보다 스윙 교정에 무게를 실어왔다. 시즌 18개 대회 중 12개에만 출전한 것도 스윙 완성을 위해서다. 해외 대회 출전도 삼갔다. 그는 “마음에 드는 스윙을 찾아낼 때까지 대회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스윙 교정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이전보다 더 강력한 파워스윙을 선보였다는 평가다. 김재열 SBS골프 해설위원은 “클럽 속도를 더해주는 하체 회전이 한층 빨라진 게 눈에 띈다”고 분석했다. 실제 고진영은 드라이버 비거리가 10~15m가량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티샷 비거리가 늘어나면서 두 번째 샷으로 그린을 공략하는 것이 쉬워졌다는 게 고진영의 설명이다. 고진영은 “부담감을 내려놓고 쳤는데 우승이 찾아왔다. 병석에 계신 할아버지께 우승 소식을 먼저 전하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고진영은 전날 2라운드에서 후반 11번홀부터 18번홀까지 8개홀 연속 버디를 잡아내 KLPGA 최다 연속 버디 타이기록을 세워 진작부터 우승 기대감을 키웠다.고진영이 살아나면서 3승의 김지현(26·한화), 각각 2승을 올린 김해림과 이정은(21·토니모리)이 구축한 ‘빅3’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이번 대회에선 여고생 두 명이 쟁쟁한 프로들을 제치고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국가대표인 유해란(16·숭일고)과 이소미(16·금호중앙여고)다. 각각 9언더파, 8언더파를 쳐 공동 8위, 11위로 대회를 마쳤다. 유해란은 2015년 에비앙 챔피언십 주니어컵에서 개인전, 단체전 2관왕을 차지한 유망주다. 이소미는 지난 4월 KLPGA 삼천리 투게더오픈 2라운드에서 공동선두에 오르는 등 선배 언니들을 위협하는 고교생 강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