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사태는 두 편 모두 책임"… 인종주의 또 불붙인 트럼프

"인종주의는 악" 발언 하루 만에 백인우월주의자 두둔 발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유혈 사태에 대해 또다시 양비론적인 발언으로 폭력 시위를 주도한 백인 우월주의자를 두둔하고 나섰다. 지지 세력 결집을 염두에 둔 정치적 속내를 내비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발(發) 인종차별주의 논란이 미국 내 우파와 좌파 간 갈등으로 전개되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샬러츠빌 폭력 사태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격앙된 어조로 “한 이야기(폭력 사태)를 놓고 두 편이 있다”며 양비론을 언급했다. 그는 이어 “‘대안우파’를 공격한 ‘대안좌파’는 어떤가. 그들은 죄가 없는가”라고 반문했다.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군 사령관이던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철거 계획에 반대하는 폭력 시위로 사상자가 발생한 직후 양비론을 펼쳤다가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이틀 만에 “인종주의는 악”이라며 ‘백기’를 들었지만 또다시 인종차별 세력을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은 인프라 투자 활성화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였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에 원고에 없던 답변을 작심한 듯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작심 발언 배경엔 지지 세력 결집과 국면 전환이라는 포석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다. 샬러츠빌 폭력 시위를 주도한 대안우파 세력과 신나치주의 쿠클럭스클랜(KKK) 등 백인우월주의 단체는 유색인종 여성 등 소수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진보·좌파적 가치 대신 백인 남성 중심의 ‘정체성 정치’를 강조한다. 정체성 정치는 자유방임주의 등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 지지 세력의 사회문화적 토대를 이룬다. KKK 대표를 지낸 데이비드 듀크는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좌파 테러리스트들을 비판한 것에 감사한다”며 즉각 호응했다.

양비론적 발언이 불러온 후폭풍도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전날 케네스 프레이저 머크 회장 등이 대통령 직속 제조업자문위원회(AMC)를 탈퇴한 데 이어 이날 리처드 트럼카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조합회의(AFL-CIO) 회장도 탈퇴 의사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문위를 떠난 모든 CEO를 대체할 사람을 나는 많이 갖고 있다”고 트윗하며 이들을 비판했다.샬러츠빌 사태를 계기로 켄터키주 렉싱턴시 등 지방정부는 사태를 촉발한 남부연합 상징물 철거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이번주는 로버트 리, 스톤월 잭슨(남북전쟁 당시 남군 장군)이 무너지고 있다”며 “다음주는 조지 워싱턴, 그다음 주는 토머스 제퍼슨이냐”고 지적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