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합의 깬 통상임금 요구는 신의칙 위배"

2심서 뒤집힌 통상임금

"상여금, 통상임금서 제외는 관행"
경영 악화에도 이익 요구해선 안돼
2심서 '신의칙 인정' 잇따라
기아차 3조 소송 영향주나 '촉각'
광주고등법원이 18일 금호타이어 통상임금 사건에서 1심을 뒤집고 회사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은 대법원이 통상임금 사건에서 제시한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적극 적용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1심에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는 법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했다가 2심에서 신의칙을 적용해 판결이 뒤집어지는 사례가 잇달아 나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재판부는 이날 “임금협상 시 노사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했는데 근로자가 노사가 합의한 임금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외의 이익을 요구하고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재정 부담을 지우는 것은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춰 신의에 현저히 반하고 도저히 용인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통상임금은 연장근로 수당(통상임금의 150%)을 계산하는 도구적 임금이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넣으면 연장근로수당이 크게 늘어난다. 대법원은 2013년 말 그동안 노사가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에 따라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해온 신뢰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근로자의 통상임금 확대 청구를 제한하는 법리로 신의칙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노사가 합의하고 이를 토대로 임금 등을 정해왔고 △근로자의 청구로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불러온다면 신의칙에 위반돼 허용할 수 없다는 법리다.

하급심에선 아시아나항공, 현대중공업 등 사건에서 1심은 신의칙 적용을 부정했다가 2심에서 인정한 사례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금호타이어 사건에서도 1심은 2009년 7761억원의 순손실, 2010년 워크아웃 돌입 등의 사실관계를 인정하고서도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2심에서 재판부는 “2010~2014년 워크아웃 기간 피고의 재정상태가 호전됐으나 이는 비용이 큰 폭으로 절감된 것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며 “워크아웃 종료 이후 경영사정이 악화되는 점 등에 비춰보면 원고들의 추가 임금 청구는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이번 소송의 원고는 네 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모두 승소한다 해도 회사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수억원대에 그친다. 그럼에도 법원이 신의칙을 적용한 것은 3000여 명에 이르는 다른 조합원들까지 소송을 제기해 회사의 인건비 부담이 대폭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법조계에선 분석했다. 금호타이어 노조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이다. 금속노조는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다른 사업장에서도 통상임금 소송을 주도하고 있다.

산업계에선 법원이 기아자동차 사건에서도 신의칙을 적용할지 주목하고 있다. 국내 간판 기업 중 하나인 기아차가 질 경우 최저임금 인상 및 근로시간 단축 등과 맞물려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송두리째 흔드는 대형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아차는 1심 소송에서 지면 지난해 순이익(2조7456억원)보다 많은 3조원 이상의 일시 부담액이 발생해 적자전환이 예상된다. 패소 즉시 그만큼의 충당금을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종 패소하면 기아차는 총 3조원이 넘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현대·기아차 협력업체들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강현우/장창민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