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빛으로 빚은 대자연의 조각품…하늘에 떠 있는 섬, 올라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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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E1
고아라 여행작가의 좌충우돌 미국 여행기
(6) 유타주 아치스 국립공원
소도시 모압에서 여행 시작
5개 구역 총 면적 310㎢ 달해
아치의 위용 보려면 트레킹 필수
석양이 지는 델리케이트 아치
한 폭의 작품을 보는 듯
"아치스 남쪽으로 창을 내겠소"

모압, 거대한 바위조각 원시의 풍경 압도적

지형적 이점 덕분에 두 국립공원을 찾는 여행가들의 전진기지이자 산악자전거, 캐니어닝, 암벽등반, 지프 라이딩, 래프팅과 같은 아웃도어 스포츠의 메카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모압은 밤만 되면 암흑이 되는 여타 시골 마을과는 다르게 언제나 생동감이 넘친다. 각종 편의시설은 물론 여행사, 전문적인 스포츠 장비를 갖춘 상점도 수두룩하다. 오지에서는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다양한 국적의 식당을 비롯해 브루어리, 펍, 카페, 박물관까지 즐길 거리도 다양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와 식당 한 곳을 찾았다. 늦은 시간임에도 내부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뜨끈한 국물 요리와 유타 수제 맥주 한 잔으로 종일 쌓인 피로를 녹인다. 저마다의 모험담을 늘어놓는 사람들의 수다소리에 도시의 밤은 저물 줄 모른다. 다가올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부푼다.
붉은 사암의 일대기가 한눈에
아치스 국립공원을 여행하는 방법
공원 내부는 크게 코트 하우스 타워(Courthouse Tower), 윈도 구역(Window Section), 델리케이트 아치(Delicate Arch), 데블스 가든(Devil’s Garden), 피어리 퍼니스(Fiery Furnace)까지 총 5개 구역으로 나뉜다. 이 중 피어리 퍼니스 지역은 지형이 험한 탓에 비지터 센터에서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 아치스 국립공원의 면적은 약 310㎢로 다른 국립공원에 비해 큰 편은 아니다. 차량을 이용해 중심도로만 돌면서 구경할 경우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천연 아치의 위용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트레킹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뉴욕의 마천루를 연상케 하는 파크 애버뉴(Park Avenue) 구역과 중력을 거부한 채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밸런스드 록(Balanced Rock)을 지나면 윈도 구역에 도달한다. 산보 수준의 트레일을 따라가면 창문을 연상케 하는 아치 두 개가 나란히 나타난다. 북쪽에 위치한 노스 윈도(North Window)와 남쪽에 있는 사우스 윈도(South Window)다. 멀리서 볼 때는 크기가 좀처럼 실감이 나질 않았는데 가까이 다가서니 한눈에 담기 버거울 만큼 웅장하다. 자연이 만든 거대한 창에 담긴 만년설과 붉은 바위들의 조화가 유난히 아름답다. 피어리 퍼니스 전망대를 지나 공원 북쪽 끝에 있는 악마의 정원 구역으로 향한다. 입구에는 아치의 전신인 핀(fin)들이 솟아 있는데, 파도가 굳어버린 것 같은 모습이 기괴하면서도 신비롭다. 이 구역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긴 아치인 랜드 스케이프 아치(Landscape Arch)와 더블 오 아치(Double O Arch)다. 더블 오 아치를 보려면 약 6.8㎞에 달하는 긴 트레일을 걸어야 한다. 꽤 험준한 길이지만 그 끝에 만나게 되는 것은 모든 고생을 잊게 할 만한 절경이다.아찔한 즐거움 안겨주는 아치 트레킹
완만하게 오르던 흙길은 어느새 커다란 사암 언덕을 기어오르는 코스로 바뀌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길은 좁아지고 옆구리에는 보기만 해도 아찔한 낭떠러지가 펼쳐진다. 긴장된 발걸음으로 마지막 모퉁이를 돌자 드디어 델리케이트 아치가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원형 극장 형태로 둥그렇게 파인 사암 절벽 가장자리에 높이 18m에 달하는 고리 모양의 바위가 우뚝 서 있다. 거세게 몰아치는 강풍에 몸 하나 가누기 힘든 이곳에서 셀 수 없이 긴 날들을 버텨왔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코앞에서 바라본 아치 곳곳은 풍화가 꽤 진행된 탓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실제 1977년 이후 아치스 국립공원에서 무너진 아치는 43개에 달한다. 억겁의 세월을 간직한 아치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영원하길 바라는 것 또한 인간만의 욕심일 뿐이다. 하나의 바위가 생을 다하는 순간에도 자연은 어딘가에서 또 다른 탄생을 빚고 있을 테니 말이다. 델리케이트 아치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석양을 기다린다. 세상은 어느새 붉은빛과 보랏빛으로 가득 메워졌다. 태양이 구름을 뚫고 아치를 찬란하게 밝힌다. 사람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멈추질 않는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동적인 풍경에 눈에는 눈물까지 고인다. 유타의 상징이 건네는 장엄하고도 섬세한 위로다.
전망대에 서면 캐니언랜즈 지형 한눈에
연간 방문객 수와 장소가 지닌 아름다움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캐니언랜즈 국립공원을 찾는 여행객은 그랜드 캐니언의 10분의 1 수준이지만, 이곳이 지닌 풍광은 세상 어느 곳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황홀하다. 캐니언랜즈 국립공원은 콜로라도 강과 그린 강(Green River)이 만나는 곳을 기점으로 아일랜드 인 더 스카이(Island in the sky), 메이즈(Maze), 니들스(Needles), 총 세 구역으로 나뉜다. 그중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접근성이 비교적 좋은 아일랜드 인 더 스카이 구역으로, 아치스 국립공원과는 약 47㎞ 정도 떨어져 있다.
하늘에 떠 있는 섬이라니, 쉽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러나 캐니언랜즈에 진입하는 순간 모든 궁금증은 사라져 버렸다. 두 개의 강줄기가 고원을 깊게 깎아 내리면서 마치 공중 위에 땅이 떠 있는 듯한 모양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공원에 조성된 5개의 전망대에 설 때마다 마치 한 마리의 새가 돼 온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이다. 남쪽 끝의 그랜드 뷰 포인트(Grand View Point)에서는 캐니언랜즈의 독특한 지형을 한눈에 관찰할 수 있다. 공룡의 발자국을 연상케 하는 기이한 협곡의 모습과 화이트 림, 겹겹이 쌓인 평원이 무한하게 펼쳐져 있다. 지구 태초의 풍광이 이러했을까, 신들이 사는 곳이 이러할까. 미국의 작가 에드워드 아비(Edward Abbey)의 말처럼 이곳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지상에서 가장 기이하고 놀라운 곳’임이 분명하다.
메사 아치(Mesa Arch)는 캐니언랜즈를 대표하는 또 다른 명소다. 편도 20분 정도의 짧은 트레일을 걸으면 우직한 자태의 아치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자체로도 멋지지만 길고 넓적한 틈 사이로 바라보는 캐니언랜즈의 풍경이 압권이다. 일출 때를 맞춰 가면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아치 사이로 지구가 불타오르는 듯한 엄청난 광경을 목도할 수 있다. 지구와 운석이 충돌한 것 같은 독특한 풍경의 업히벌 록(Upheaval Rock)과 협곡을 뱀처럼 휘감아 도는 콜로라도 강의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데드 홀스 포인트(Deadhorse Point)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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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압=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