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정부에 나는 '갭투자자'… 수도권·지방으로 발길 돌려

8·2 대책 벗어난 지역 투자 활발
컨설팅 단체 주도로 원정 답사
외지 투자자 거래량도 증가세

풍선효과 기대했다가 낭패볼 수도
8·2 대책을 피해 갭투자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경기 부천 일대 아파트 단지. 한경DB
‘8·2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열흘 뒤인 지난 12일 경기 안양시 호계동의 한 소형 아파트 단지 앞에 중장년층 남녀 7명이 모였다. 한 갭(gap)투자 컨설팅 업체가 연 답사 프로그램 참가자들이었다. 서울 목동과 경기 남양주, 대전 등 각지에서 모인 이들은 9인승 승합차를 타고 호계동을 비롯해 인근 비산동과 관양동 등을 돌아봤다. 이들은 이날 반나절 답사를 통해 소형아파트와 다세대주택 3가구를 사들였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장모씨(50)는 “그간 서울 노원구와 성북구 다세대주택 등에 투자했는데, ‘8·2 부동산 대책’으로 서울 전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서 거래가 까다로워졌다”며 “대체투자처를 찾기 위해 주말마다 수도권과 지방을 돌고 있다”고 말했다.8·2 대책 이후 갭투자자들이 규제에서 벗어난 지역으로 활동무대를 옮기고 있다. 투기과열지구나 조정대상지역에 들어가지 않은 수도권·지방 중소도시 위주로 답사와 거래가 활발하다.

◆갭투자자 “수도권·지방 중소도시로”

8·2 대책을 피해 갭투자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경기 부천 일대 아파트 단지. 한경DB
갭투자 수요가 높아지면서 수도권·지방 중소도시의 소형 주택은 8·2 대책 이후에도 매매가가 소폭 올랐다. 경남 양산시의 대동이미지타운 아파트는 지난달 1억원에 팔린 전용면적 59㎡가 지난주 1억1300만원에 거래됐다. 경기 평택시 합정동의 주공아파트 전용 59㎡, 전남 광양시의 매화마을주공 전용 52㎡도 8·2 대책 발표 후 이전보다 500만원가량 높은 가격에 팔렸다.

갭투자자들은 8·2 대책 이전부터 이미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높은 수도권, 지방을 대상으로 투자를 꾸준히 늘려왔다. 갭투자에 뭉칫돈이 몰리면서 수도권·지방 주택 거래의 외지 투자자 비율은 날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안양시 주택 거래량은 7142건을 기록했다. 이 중 1262건은 경기도 외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외지투자자가 거래했다. 지난해 동기 외지투자자 거래량 988건에 비해 28% 높아졌다.호계동 인근 A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대책 이후에도 서울 등 타지 사람들의 전화 문의가 많다”며 “거래 후 입주를 원하는 실수요자 비중은 약 2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갭투자자”라고 말했다. 전세가격과 매매가격의 차이가 크지 않은 경기 부천시 상동, 심곡동 등도 갭투자자가 많이 몰리는 지역으로 꼽힌다.

지방도 비슷한 모양새다. 강원 강릉시의 외지투자자 주택 거래량은 지난해 1~6월 588가구에서 올해 동기 841가구로 43% 늘었다. 1~6월 강릉 주택 거래량이 올해 2152가구, 작년 2059가구로 증가폭이 4%에 그친 것에 비하면 두드러지는 수치다. 또 충북 청주의 외지투자자 주택 거래량이 지난해 1153건에서 올해 1991건으로 늘었다. 전남 광양, 경남 양산 등도 최근 외지투자자 거래량이 높은 곳으로 꼽힌다.

◆거래·대출 규제 적용 어려운 곳 인기갭투자자가 수도권·지방 중소도시로 몰리는 이유는 8·2 대책을 피해가기 쉬워서다. 투기과열지구나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아 투자에 큰 제약이 없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이들은 양도세 중과세도 쉽게 피할 수 있다. 8·2 대책에 따르면 수도권 주택은 공시가격 6억원, 지방은 3억원 이하일 경우 거래 시 중과세가 면제된다. 중소도시 주택은 서울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해 수월하게 기준을 맞출 수 있다.

높은 전세가율도 이들이 중소도시에 몰리는 이유다. 전세가율이 높으면 대출규제로 조달할 수 있는 자본금이 낮아 큰돈을 들이지 않고 투자할 수 있다. 안양시 석수동의 주공그린빌은 전용 53㎡ 매매가가 2억9000만원, 전세가는 2억7000만원 선이다. 부천시 상동 상동스타펠리스2의 전용 75㎡는 매매가 2억5400만원, 전세가 2억3500만원 선으로 전세가율이 90%에 달한다.

지방 중소도시는 기존 산업단지에 도시재생사업 계획이 겹친 곳에서 최근 외지투자자들의 거래가 활발하다. 도시재생은 현 정부의 중심 사업이니 향후에도 투자 규제 가능성이 낮다는 기대에서다.

투자자가 몰리는 청주시는 360여 개 기업이 입주한 기존 청주1·2산업단지 409만9000㎡를 고밀도 산업단지로 재생 개발할 계획이다. 2024년까지 2875억원을 투입하는 사업이다. 양산시는 1098억원을 들여 152만9000㎡ 규모 양산일반산업단지를 리모델링하는 사업을 올해 초 확정했다. 강릉은 강릉과학산업단지를 확대 조성하고 있다.광양 등 청년인구 비중이 높은 편인 중소도시도 인기다. 함영진 부동산114센터장은 “8·2 대책으로 서울 매매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일부 갭투자자가 지역 중소도시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다만 기존 수급 상황과 향후 공급 물량, 인구 추세 등을 고려하면 풍선효과가 나타나는 지역은 몇몇 도시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