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향기] 오토매틱·블루핸즈·투르비용…240년간 최초만 기록한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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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스토리 (7) 브레게나폴레옹, 마리 앙투아네트, 윈스턴 처칠. 모두 스위스 시계 브랜드 ‘브레게(Breguet)’를 사랑한 사람들이다. 정확한 시간이 생명인 워치 메이커들 사이에서 브레게는 ‘최초의 투르비용 개발자’ ‘블루핸즈 창시자’로 불린다. 240년이 넘는 브레게의 역사는 곧 시계 기술력의 발전을 보여주는 역사이기도 하다.
나폴레옹·윈스턴 처칠이 사랑한 브레게
혁신적 워치 메이커
스위스 출신의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1775년 프랑스 파리에 첫 공방을 열고 최초의 오토매틱(자동으로 태엽이 감기는 기계식 시계)을 선보였다. 프랑스 상류 사회에서 브레게는 ‘혁신적인 최고의 시계’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1783년에는 미닛리피터(정해진 시간마다 소리로 알려주는 기능)의 핵심부품인 공 스프링을 무브먼트(동력장치) 외곽으로 감싸는 형태를 고안해냈다. 1786년에는 다이얼 위에 일정한 무늬를 새겨넣는 기술(기요셰)을 선보였고, 1790년 충격방지 장치(파라슈트)를 개발하는 등 끊임없는 기술 혁신을 이뤄냈다.브레게 기술력의 핵심은 1801년 개발한 ‘투르비용’이었다. ‘회오리 바람’을 뜻하는 이 무브먼트는 ‘지구의 중력과 착용 위치에 따라 무게중심이 변하면서 시간 오차가 생기는 것을 막아주는 부품’으로 아주 정밀한 기술력을 필요로 했다. 이 부품을 개발하면서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같은 해 6월 프랑스 내무부로부터 특허를 취득한다. 최고의 시계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마리 앙투아네트, 나폴레옹의 여동생인 카롤린 뮤라 등 유명인들이 브레게에서 시계를 주문했다. 역사적 순간마다 유명인들의 손목에는 브레게 시계가 있었던 셈이다.그 이후에도 브레게의 혁신은 이어져왔다. 1939년 항성용 타임 측정에 대한 특허를 취득했고, 1990년에는 시간을 맞춰주는 기능 외에 태엽까지 감아주는 새로운 탁상용 시계를 개발했다. 1991년에는 태양이 공전하는 타원형 궤도를 계산해 실제 시간과의 오차를 보여주는 균시차 기능을 개발해냈다. 1997년 퍼페추얼 캘린더의 모든 기능을 일직선으로 정렬한 ‘인라인 퍼페추얼 캘린더’를 개발했고, 1998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만들기도 했다.
역사적 순간마다 ‘브레게’역사에 기록된 아름다운 시계들도 브레게의 손을 거쳤다. 1783년 브레게는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아름다운 시계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하자 정교한 시계를 제작했다. 퍼페추얼 캘린더와 미닛리피터, 온도계, 크로노그래프,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등을 장착한 시계를 제작했지만 당시 정치적 혼란 속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졌다. 이를 아쉬워한 브레게는 2008년 마리 앙투아네트 워치를 복원해 바젤페어에서 공개하기도 했다.
나폴레옹 황제가 찼던 브레게 시계는 그가 군사 회의 때마다 챙길 만큼 소중한 물건이었다. 나폴리의 여왕이자 나폴레옹의 여동생이었던 카롤린 뮤라는 화려한 여성용 브레게 손목시계를 착용했다. 이 시계는 브레게의 스테디셀러인 ‘레인 드 네이플’ 시계 디자인으로 이어져왔다. 레인 드 네이플은 우아한 타원형으로 여성미를 극대화한 시계다. 2002년 첫 출시 이후 꾸준히 인기를 끄는 모델이다. 3㎜×24.95㎜ 사이즈는 손목에 착용했을 때 가장 아름다워 보이도록 계산된 크기라고 한다. 올해는 기존 로마숫자 버전 외에도 아라비아숫자 버전을 추가했다. 쨍한 핑크색 스트랩 버전도 나왔다. 4000만원대.
블루핸즈가 돋보이는 스테디셀러
무엇보다 브레게를 대중에게 알린 시계는 클래식 라인이다. 더 이상 얇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블루핸즈(시곗바늘)가 돋보이는 디자인이다. 블루핸즈는 브레게를 대표하는 기술력 중 하나다. 균일한 속도로 초침이 흘러갈 수 있도록 열처리를 하면서 선명한 파란빛을 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브레게 클래식 시계들은 새하얀 애나멜로 구운 다이얼, 새파란 시곗바늘과 고전미를 살린 인덱스(문자판)의 조화가 돋보인다. 또 시계 중앙과 3시 사이에는 아주 작은 크기로 브레게 로고를 새겨넣어 정품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기능과 소재에 따라 가격은 2600만~3700만원대, 투르비용 모델은 2억원대다.
역동적인 남성들을 위한 마린 컬렉션도 인기 제품이다. 크로노미터(시간·거리 등을 측정하는 장치) 기능을 장착한 ‘마린 크로노그래프 5823’ 모델에서 올해는 200개 한정 생산한 ‘200 앙스 드 마린’을 내놨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프랑스 해군을 위한 크로노그래프 메이커로 임명된 지 200년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42㎜ 크기로 블랙 러버(고무) 스트랩을 달았다.여성들을 위한 주얼리 워치도 출시했다. ‘마린 크로노그래프 8828BB’는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우아하게 표현해냈고 인덱스, 블루핸즈, 마더오브펄(진주조개) 다이얼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등을 사용한 모델로 크기는 34.6㎜, 가격은 4900만원대다. 이밖에도 브레게는 트래디션, 헤리티지, 타입투웬티 등 다양한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