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말하면 자동통역"… 한국 기술이 세계표준 됐다

ETRI '제로 유아이 자동통역'

스마트폰 화면 터치 않고도 블루투스 활용 헤드셋으로 번역된 음성 들려줘 말하듯 대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진이 머리에 헤드셋을 착용한 채 서로 마주보고 양방향 자동통역 서비스를 시연하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제공
한국이 개발한 실시간 자동통역서비스 기술이 국제표준에 채택됐다. 앱(응용프로그램)만 실행하면 스마트폰에 손을 대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대화하듯 통역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 혁신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표준화기구(ISO) 국제전기표준회의(IEC) 합동기술위원회 분과위원회의에서 한국이 개발한 ‘제로 유아이 자동통역 기술’이 국제 표준으로 최종 승인됐다.이 기술은 사용자가 스마트폰을 주머니나 핸드백에 두고 블루투스 헤드셋을 통해 통역을 제공받는 방식이다. 사용자가 웨어러블 헤드셋을 착용한 뒤 말하면 목소리가 스마트폰으로 전달돼 통역되고 번역된 내용이 상대 스마트폰 헤드셋에 전송된다. 자판을 두드려 서비스를 받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헤드셋을 사용하는 핸즈프리 방식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진은 “자동통역 서비스로 더는 터치스크린과 같은 사용자 인터페이스(UI)가 필요 없게 됐다는 뜻에서 제로 유아이 기술로 명명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딥러닝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자동통역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서비스는 스마트폰에 대고 말을 하고 상대방에게 통역 결과를 화면으로 보여주거나 스피커로 들려주는 방식이라 불편한 점이 많았다. 사용상 자연스럽지 못해 이용자 확산에 한계가 많았다.

제로 유아이 자동통역 기술에는 ‘2채널 음성처리 기술’과 ‘바지 인 기술’이란 핵심 기술이 들어있다. 2채널 음성처리는 사용자 음성을 감지하고 입력하는 채널을 분리하는 기술이다. 바지 인 기술은 합성음 재생과 음성 인식이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스마트폰을 보고 번역 내용을 입력하거나 번역 결과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상대를 보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통역이 필요한 언어를 자동 인식하기 때문에 말을 하면 즉시 통역을 시작한다. 상대 목소리가 본인 마이크에 입력되면서 오동작하거나 시끄러운 장소에서는 사용하기 어려운 문제도 해결했다.이번 연구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지원하는 ‘언어장벽 없는 국가구현을 위한 자동통·번역 산업경쟁력 강화 사업’의 하나로 진행됐다. 기술을 개발하면서 핵심 기술 7건을 국제 표준특허로 출원했다.

자동통역 기술 인터페이스가 국제표준에 선정되면서 시장 전망도 밝다. 가장 먼저 내년 2월 열리는 강원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기술을 선보일 전망이다. 김상훈 ETRI 프로젝트 리더는 “이번 표준화 기술을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시범 적용해 해외 시장 확대 가능성을 살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국내 정보기술(IT)의 국제 표준화가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3월 영상 콘텐츠에 사실감을 더하는 4D 실감 영상을 구현하는 엔진이 국제표준으로 지정됐다. ETRI 연구진이 개발한 이 기술은 4D 영화관에서 실감나는 영화 관람을 위해 나오는 바람, 향기, 조명과 같은 실감효과 데이터 실제 영상과 연동해 전달하기 위한 기술이다. 최근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기술이 인기를 얻게 됨에 따라 극장이나 전시관 같은 곳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ETRI 기술은 보다 쉽게 영화를 실감나게 재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