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 순자산 5년새 두 배 급증… 은행 거래 '큰손'도 석 달간 1조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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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F 전성시대뱅가드그룹의 창립자 존 보글이 1975년 세계 최초의 패시브 펀드인 ‘뱅가드 500 인덱스펀드’를 내놓았을 때 자존심 강한 월스트리트의 펀드매니저들은 이 펀드를 ‘콘도르(독수리) 펀드’라고 불렀다. 시장을 이기려고 노력하는 대신 지수 수익률을 따라가는 패시브 펀드가 초원에서 동물들의 썩은 시체나 뜯어먹는 콘도르와 비슷하다는 조롱의 의미였다.
코스피200·업종 등 지수 추종
개별종목 투자보다 비용 절약
인덱스주식형 1년 수익률 21%
액티브 펀드 수익률의 두 배
레버리지·인버스 투자도 가능
수수료·괴리율 꼼꼼히 살펴야
40여 년이 지난 지금 패시브 투자는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주식시장에 상장돼 쉽게 사고팔 수 있는 상장지수펀드(ETF)가 패시브 돌풍의 핵이다. ETF 시장규모 1위인 미국 증시에서 ETF가 전체 거래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12%에서 지난해 23%로 늘었다.◆“지푸라기 더미를 다 사라”
ETF는 지수 수익률을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를 증시에 상장해 쉽게 거래할 수 있게 만든 상품이다. 예를 들어 코스피 200 ETF는 코스피200지수의 하루 등락폭만큼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코스피 200 ETF를 한 주 사면 코스피200지수에 포함된 200개 종목을 모두 사는 셈이다.
보글은 자신의 저서 《모든 주식을 소유하라》에서 “지푸라기 더미에서 바늘을 찾으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지푸라기 더미를 사라”고 조언했다. ‘바늘’(유망주)만 콕 집어 가지는 것보다는 수익률이 낮겠지만 적어도 바늘은 확실히 가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ETF의 인기를 이끄는 건 수익률이다. 금융정보 제공업체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25일 기준 최근 1년간 국내 270개 인덱스주식형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21.67%로 조사됐다. 국내 556개 액티브주식형펀드의 평균 수익률 10.94%를 압도했다.
‘바늘’을 고르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이 절약된다는 것도 강점이다. 종목에 투자하려면 기업의 업황, 사업구조 등 파악해야 할 요소가 많다. 하지만 업종별 지수나 시장별 지수에 투자하면 개별기업을 분석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덱스 펀드의 수수료는 액티브 펀드의 절반 수준이다. 인덱스 펀드 중에서도 ETF는 증시에 상장돼 있기 때문에 매매에 2거래일이 걸리는 일반 펀드와 달리 실시간으로 거래할 수 있다는 장점까지 갖췄다.◆ETF 성장 이끄는 개인투자자
ETF 시장 성장을 이끄는 주역은 개인투자자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의 ETF 거래 비중은 지난 1월 기준 41.2%였다. 기관과 외국인 비중은 각각 19.4%와 19.3%에 머물고 있다. 주식투자에 소극적인 은행 고객들도 ETF 매수에는 적극적이다. 최근 3개월간 은행 신탁을 통해 거래된 ETF 규모만 1조원을 넘는다.
지수 상승폭의 2배만큼 이익을 얻거나(레버리지), 지수가 하락할 때 이익이 나는(인버스) 상품도 많아 다양한 투자전략을 짤 수 있다는 것도 ETF의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예를 들어 19대 대통령선거 다음날인 지난 5월10일엔 시장 상승을 예상한 투자자들이 ETF를 샀다. 당일 ETF 거래량은 전체 유가증권시장의 32.4%를 차지했다. 이 중 증시 상승을 예상하고 투자하는 코스피200 ETF나 지수 대비 두 배의 수익률을 내는 레버리지 ETF 거래가 13%포인트를 차지했다.지수나 상품 가격이 박스권에 갇혀 있을 때는 지수 하락폭만큼 수익을 얻는 인버스 ETF와 상승폭의 두 배만큼 수익을 얻는 레버리지 ETF를 활용한 단기투자가 관심을 끈다. 지난해까지 코스피지수가 박스권(코스피지수 1800~2050)을 맴돌 동안 지수가 1800에 가까워지면 코스피200 레버리지 ETF를 사고 2000을 넘기면 코스피200 인버스 ETF를 사는 전략이 인기였다.
◆수수료·괴리율·규모 따져야
ETF는 증권사 계좌를 개설하면 일반 종목과 똑같이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등에서 거래할 수 있다. 은행 신탁을 통해 ETF를 살 수도 있지만 증권사 계좌에서 매입하는 것보다 거래수수료가 1%포인트가량 비싸다.
ETF를 고를 때는 수수료와 괴리율이 낮고 규모가 큰 ETF를 고르는 게 좋다. 같은 지수를 추종하는 ETF는 기대수익률이 비슷하지만 장기투자할수록 수수료에 따라 수익률 차이가 벌어질 수 있어서다.ETF 괴리율은 ETF의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가격과 순자산가치의 차이를 나타낸다. 괴리율의 절댓값이 작을수록 기초 지수의 등락을 잘 반영했다는 의미여서 좋은 ETF로 평가받는다. ETF 규모가 클수록 투자자가 원하는 시점에 매매할 확률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
나수지/송종현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