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선 '역사의 노숙인'… 한국 현대사를 얘기하다

리뷰 연극 '노숙의 시'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 시대를 산 사람에게 자국을 남긴다. 그 바퀴자국을 상처처럼 또는 영예처럼 안고 사는 인간은 다시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동력이 된다. 시대와 개인이 결코 분리될 수 없고 우리 모두가 ‘역사적 인간’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울 명륜동 30스튜디오에서 공연 중인 연극 ‘노숙의 시’는 인간과 역사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야기다.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미국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의 ‘동물원 이야기’에 살을 붙여 다시 쓰고 연출했다. ‘동물원 이야기’는 뉴욕 센트럴파크 벤치에서 만난 제리와 피터라는 두 인물을 통해 소외된 인간의 고독과 소통을 다룬 작품이다. 사회성이나 역사성은 뚜렷하지 않다. 이윤택은 이 작품에 ‘동시대의 한국 역사’를 입혔다.원작에서 ‘동물원에 갔다 왔다’며 등장하는 제리는 이 작품에서 ‘광장에 갔다 왔다’는 노숙인 무명씨로 다시 태어났다. 무명씨는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부모와 헤어지고, 1987년 대통령 선거에 대한 실망감으로 30년간 망명 생활을 하다 ‘우리말로 지껄이기 위해’ 2016년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왔다. 원작의 피터는 1990년대 대학 시절을 보낸 뒤 가정을 일구고 직장에 다니던 평범한 사람이지만 회사에서 쫓겨난 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김씨로 그려진다. 명계남이 무명씨를, 오동식이 김씨를 맡아 몰입도 높은 연기를 펼친다.

연극은 에두르지 않는다. 작정하고 세상에 말을 건다. ‘광장’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1장은 특히 직설적이다. 이어지는 2장과 3장은 문학적이고 상징적이다. 원작 속 상징에 동시대 한국의 역사성을 결합해 그 의미를 확장시킨 이윤택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원작에서 막연한 유토피아를 나타내는 ‘북쪽’의 의미가 분단을 극복하는 통일로 확장되는 게 대표적이다.

극 말미에 김씨는 말한다. “당신이 세상을 가로질러 내게 오는 동안 나는 눈 감고 귀 막고 나 자신에 집착했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갈구한다. “하나님, 제게 용기를 주십시오. 내 마음은 행동을 원하고 내 숨은 자유를 원합니다.” 이윤택은 “연극이 세상에 말을 거는 담론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작품은 산다는 게 무엇인지, 우리 사회는 이대로 괜찮은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다음달 17일까지, 3만원.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