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음표 뒤에 숨어있는 음색과 혼 찾아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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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두번째 앨범 낸 첼리스트 양성원하나의 악기만으로 네 개의 성부가 펼쳐지며, 가득 채워지는가 싶더니 하얗게 비워지는 듯 흩어진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얘기다. ‘첼로의 구약성서’라고 불릴 만큼 첼리스트들이 바이블로 여기는 곡이다.
31일 대구, 내달 15일 서울 등서 파리·도쿄에서도 기념 공연
올해 50세를 맞은 첼리스트 양성원(사진)도 마찬가지다. 그는 43년의 음악 인생에 걸쳐 바흐의 이 작품을 끊임없이 연습하고 무대에서 연주했다. ‘왜 매번 바흐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연주할 때마다 그는 또 다른 바흐를 발견한다고 한다. 2005년에 이어 12년 만에 데카 레이블을 통해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녹음, 최근 발매한 것도 이 때문이다.양성원은 29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10여 년 전 자신의 사진과 최근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많이 달라진 모습에 놀라듯 시간이 지나며 다른 느낌과 깊이의 바흐를 발견하게 된다”며 “과거엔 왼손으로 음표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짚으려고 했다면 이번엔 오른팔로 활을 쓰는 데 집중하며 음표 뒤 숨은 음색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양성원은 미국 인디애나주립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 카네기홀, 오스트리아 무지크페라인, 파리의 살플레옐 등 해외 유명 공연장에 올랐다. 2015년 세종문화회관 상주음악가로 활동했다.
총 6곡으로 돼 있는 이 작품은 많은 연주자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연주자의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 2시간40분이 걸리는 전곡 연주 시간도 부담이다.“바흐 작품은 연주자에게 발가벗은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투명합니다. 300여 년의 시간적 간극에도 사랑받는 불후의 명곡이 된 이유도 이 때문이죠. 그 음표들에 어떤 혼이 담겨 있을지 꼭 찾아내고 싶었습니다.”
이번 앨범은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봉스쿠르 성당에서 녹음했다. 믹싱 작업(녹음과정에서 잡음 제거나 음향 효과를 강화하는 일)도 없이 모든 소리를 고스란히 담았다.
“때론 나뭇잎 소리도 들리고, 성당 밖 돌멩이 구르는 소리도 들어갔어요. 전설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자신의 숨소리까지 다 녹음했듯 말이죠. 아무 필터링 없는 소리 전체를 담는 게 제대로 된 음악적 기록이니까요.”국내외에서 전곡 연주 공연도 연다. 국내에선 총 5회에 걸쳐 무대에 오른다. 31일 대구 신세계문화홀, 10월1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공연 등이다. 파리 노트르담 봉스쿠르 성당, 도쿄 하쿠주 홀 등에서도 9~10월 잇따라 연주를 한다. “이 작품의 전곡을 듣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10~20년이 흐른 후에도 잊혀지지 않을 신비로우면서도 감동적인 명곡을 접하게 될 겁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