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처럼… 유행 타는 명품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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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 럭셔리' 시대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에서 올초 출시한 캐주얼 신발 ‘스피드 러너’(사진) 스니커즈는 요즘 없어서 못 구한다. 출시되자마자 롯데백화점 등 주요 백화점에서 한 달 만에 품절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스피드 러너를 구하지 못한 소비자를 상대로 해외 매장에서 대리구매해주거나, 중국산 모조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알렉산더 맥퀸의 굽 높은 운동화인 ‘오버솔’도 마찬가지다. 롯데백화점에서 올해 1~7월 명품 신발 매출은 117% 뛰었다.명품 브랜드들이 과거와 달리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처럼 빠른 속도로 신제품을 내놓고 유행을 제시하면서 상대적으로 가격부담이 적은 명품 신발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늘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20~30대 젊은층 명품 유입
가방·시계 대신 신발 인기
SPA는 명품처럼
디자인 강화·고가 라인 출시
"누가 트렌드 좌우하나 싸움"
◆빠르게 변하는 명품 브랜드
명품 패션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김혜라 롯데백화점 명품패션 선임바이어는 “1년에 두 번가량 컬렉션을 내던 명품 브랜드들이 이제는 제품 콘셉트를 자주 바꾸고 있다”며 “‘패스트 럭셔리’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고 말했다. 명품 브랜드가 트렌드를 제시하면 SPA 브랜드들이 재빨리 디자인을 베껴 출시해버리기 때문에 계절마다 새로운 트렌드를 공개하는 전략을 쓴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패션 유행이 과거보다 빠르게 바뀐다는 것.
유행이 빨라지면서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품목도 바뀌었다. 가방과 시계 중심이었던 명품 패션에서 신발 비중이 커지고 있다. 원래 캐주얼화를 선보이지 않았던 알렉산더 맥퀸 등의 브랜드도 올해는 신발 신제품을 출시했다.
김 바이어는 “20~30대 소비자 사이에서 명품 캐주얼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며 “나이키 등 스포츠 브랜드 신발보다 고급스럽고, 가격도 대체로 100만원을 넘지 않아 유행이 바뀌어도 신제품을 구입하는 게 상대적으로 부담스럽지 않다는 이유”라고 말했다. 겐조, 골든구스, 릭오웬스, 네오프랜 등 브랜드에서도 캐주얼 신발 매출 비중은 40~70%가량 차지하고 있다.
원래 백화점에서 명품브랜드는 40~50대 중·장년층이 주로 구매했다. 하지만 유행이 빠르게 바뀌면서 젊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효과를 내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젊은 층 방문이 늘자 다음달 서울 소공동 본점에 알렉산더 맥퀸 매장을 정식으로 열기로 했다. 부산 본점 겐조 매장은 의류 매장과 신발 매장을 분리할 계획이다.
◆SPA는 디자인 역량 강화명품 브랜드들의 신제품 출시 주기가 빨라지자, SPA 브랜드들은 반대로 명품 브랜드를 따라 디자인을 강화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비싼 프리미엄 브랜드를 출시하고, 디자인 인력을 확충하는 식이다. 자라의 마시모두띠, H&M의 코스·앤아더스토리즈 등이 프리미엄 SPA 브랜드다. 이들 브랜드는 명품 브랜드처럼 컬렉션을 내놓는 등 독자적 디자인을 개발하고 있다. 앤아더스토리즈는 스웨덴 스톡홀름과 프랑스 파리 등에 아틀리에를 두고 각 아틀리에에서 의상을 디자인해 컬렉션을 공개한다. H&M은 매년 명품 브랜드와 협업 한다. 이들 브랜드의 디자인 역량을 배우고 브랜드 가치도 높인다는 전략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과거에는 SPA 브랜드들이 저작권 침해 손해배상금을 내면서까지 명품 브랜드 디자인을 따라하고, 명품 브랜드는 SPA 브랜드가 디자인을 베끼지 못하도록 막는 데 주력했지만 이제는 명품 브랜드들이 유행에 민감해지고, SPA 브랜드는 디자인 역량을 키우는 등 서로 닮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