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新북방정책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1990년 5월 김종휘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보좌관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외교 고문인 아나톨리 도브리닌으로부터 비밀리에 만나자는 ‘깜짝 연락’을 받았다. 도브리닌은 전직 국가수반회의 총회 참석을 위해 서울에 왔지만, 실제론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밀사였다.

김 보좌관을 서울 신라호텔에서 만난 도브리닌은 “6월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소 정상회담을 열 수 있다”며 “소련은 한국과 수교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양국은 정상회담을 거쳐 그해 9월 수교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추진한 북방정책이 전기를 맞은 것이다.북방정책은 노 대통령이 1988년 취임사에서 “우리와 교류가 없던 저 대륙국가에도 국제 협력의 통로를 넓게 할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한반도 평화통일’이라는 역사적 업적을 위해 소련·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반드시 필요했다는 게 염돈재 당시 청와대 비서관의 회고다. 노 대통령 지시로 박철언 정책특보와 김 보좌관을 중심으로 한 두 라인이 각각 나섰고, 약 2년간 소련 측 인사들과 비밀접촉 끝에 수교 결실을 거뒀다. 수교 과정에서 한국은 러시아에 30억달러의 차관을 줬다가 제때 받지 못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 땐 소련이 해체된 뒤 후속 국가인 러시아가 혼란을 겪으면서 양국 관계가 크게 진전되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 이후엔 러시아 극동지역 자원 개발을 목표로 한 북방외교를 추진했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2001년 2월 김대중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극동러시아개발위원회를 만들어 극동연해주 한·러 공동개발,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연결 등을 추진키로 했다. 그러나 북한이 호응하지 않아 실행하지 못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추진된 남·북·러 가스관 연결사업은 이명박 정부 때 러시아와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졌으나, 남북한 관계가 경색되면서 성사되지 못했다. 유라시아 대륙을 경제공동체로 묶고 북한의 개방을 유도한다는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구상에만 머물렀다.문재인 대통령이 다음달 6~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신(新)북방정책 비전’을 천명할 것이라고 한다. 한국과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이 회원국인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간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한·러 자원 협력, 나진·하산 물류사업 재추진, 철도 전력망 등 남·북·러 3각 협력 기반 마련 등이 ‘신북방정책’의 주요 내용이 될 전망이다. 일부 사업은 남북한 관계 개선이 전제 조건이다. 이번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