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책 속으로] '그림 그리는 의사' 김정욱 씨 "의사로서 무표정한 제 모습 뜨끔할 때마다 그림 그렸죠"

병원의 사생활
낙서하기와 만화를 좋아하는 소년이 있었다. 그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예민했다. 순간을 붙잡아두기 위해 일기를 썼다. 자라서는 의과대학에 갔다. 확고한 목적지가 있는 듯 열심히 달려가는 친구 사이에서 자주 이질감을 느꼈다. 대학 시절엔 정신과에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인가보다. 15도씩 열 두 번을 움직여 180도 반대편에 있는 신경외과 의사가 됐다고 한다. 삶과 죽음 사이를 일상처럼 오가는 삶에서 가슴 속에 뭔가 ‘콱’ 박힐 때, 그는 그림을 그리고 일기를 썼다.

성균관대 의대를 졸업하고 삼성창원병원에서 신경외과 전공의로 수련 중인 김정욱 씨(32·사진) 얘기다. 그가 의대 졸업 후 인턴 1년을 거쳐 신경외과 전공의 생활을 하는 4년 동안 그리고 쓴 것들을 모아 《병원의 사생활》(글항아리)이라는 책을 펴냈다.
“뿌듯한 일도 부끄러운 일도 자주 잊어버리는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자 조금씩 기록을 남겼습니다. 보고 겪고 깨닫고 후회할 때였습니다. 1주일에 퇴근이 몇 번 없는 직업이기에 1000일이 넘는 날 동안 남긴 기록은 일흔 개 남짓입니다. 부실한 기록이지만 성장하려고 발버둥치는 전공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는 환자를 ‘본다’는 표현보다 ‘마주한다’는 표현을 좋아한다. 의사가 환자를 관찰할 때 환자 역시 의사의 면면을 바라보며 느낀다는 생각에서다. 이 책의 표지에는 그의 얼굴 그림이 있다. 거울로 본 자신이 아니라 수술방에 누워 자신을 보는 환자의 눈에 비친 자기 얼굴이다. 낯선 수술방에서 겁에 질린 환자를 내려다보는 자신의 표정이 무표정하기 짝이 없었음을 스스로 인식했을 때 그는 뜨끔하고 찔렸다. 그 반성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이후엔 침대를 끌고 수술방에 들어갈 때 항상 환자의 손을 잡는다. 그 순간엔 할머니이거나 꼬마이거나 모두 내민 손을 꼭 잡는다고 한다.그의 그림은 의사 몰래 담배를 피우는 환자의 뒷모습, 산소 공급을 위해 성대 아래에 기관을 삽입한 환자의 목, 명절 근무 중 한 입 베어 문 초코파이 등을 포착한다. 시선은 따뜻하다. 나이 지긋한 환자의 보호자가 까마득히 어린 자신 앞에서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있는 걸 본 날 그는 그 맞잡은 손을 그려두었다. 그리고 “이 어색한 역전을 결코 당연한 듯 받아들이지 말자”고 적었다.

“생로사가 아니라 생로병사라고 하듯 병은 삶의 한 흐름입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환자이고 보호자일 것입니다. 이 책이 환자들에겐 위로가 되고 많은 분께 병원과 환자를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344쪽, 1만6000원)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