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별동대' 파견 10개월… 악취 사라진 대덕전자

'대·중기 상생' 성공사례

작업환경 개선은 청소부터
삼성전자 직원 4명 상주
눌어붙은 약품 닦아내고 소음심한 설비엔 차단막
불량률 감소·생산성 향상…사무직 직원도 청소 동참
“제 말 잘 들리시죠? 예전에는 고함을 질러도 의사소통이 어려웠습니다.”

지난 8일 경기 시흥공단의 대덕전자 생산라인에 들어서자 박성윤 대덕전자 환경안전팀장이 뒤돌아보며 말했다. 집채만 한 생산기기들이 곳곳에서 웅웅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소음이 컸지만 대화가 힘들 정도는 아니었다. 황산을 비롯한 각종 화공약품 8000여t을 한 해에 사용하는 공장이지만 코를 찌를 듯한 악취가 없다는 것도 신기했다. 박 팀장은 “10개월 만의 변화”라며 웃었다. 대덕전자 직원들과 삼성전자가 파견한 ‘별동대’ 4명이 함께 일군 성과다.
협력사와 함께 생산 혁신

대덕전자는 반도체 등에 들어가는 인쇄회로기판(PCB)을 공급하는 삼성전자의 1차 협력사다. PCB 표면에 전류를 선택적으로 흐르게 하려면 PCB 표면을 깎아내고 화공약품으로 코팅해야 해 생산현장의 소음과 악취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변화의 계기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김영재 대덕전자 사장은 “지난해 10월 삼성전자가 협력사를 대상으로 마련한 환경안전혁신대회에 갔다가 삼성전자에 작업 환경 개선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협력사의 생산 환경 개선을 전문으로 하는 삼성전자 글로벌EHS(환경·건강·안전)센터 직원 4명이 투입됐다. 박경순 파트장을 중심으로 각각 공장 설비와 방재, 안전·보건, 조직문화 등의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다. 이들은 대덕전자에 상주하면서 공장의 문제점들을 확인하고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박 파트장은 “수억원짜리 설비 없이도 악취와 소음의 원천을 차단하면 생산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시작은 청소였다. 각종 생산설비 밑에 화공약품이 떨어져 있는 것부터 닦아냈다. 화공약품이 한 방울씩 스며 나와 고드름처럼 굳어버린 펌프의 이음쇠도 일일이 닦아냈다. 대덕전자의 10년차 생산직 직원은 “회사에 입사한 뒤 이런 이음쇠를 청소한 것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화공약품이 스며 나왔던 부분에는 LED(발광다이오드) 램프를 달아 누액이 있으면 바로 확인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래도 냄새가 나는 부분은 유리창틀을 만들어 외부와 격리했다. 유리창틀은 악취는 물론 소음을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 소음이 심한 모터 등의 생산설비 근처는 흡음장치를 둘러 소음을 줄였다.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공장 안의 각종 화학물질 농도는 55.1ppb(ppb는 10억분의 1을 나타내는 단위)에서 7.3ppb로, 소음은 85dB에서 76dB로 떨어졌다. 이 기간 대덕전자 직원들이 해결한 공장 안팎의 개선사항은 3만5000여 건에 이른다.

조직문화도 개선변화는 생산현장에 그치지 않았다. 소음과 악취가 차츰 줄어들자 직원들이 스스로 나서 개선할 사항들을 찾기 시작했다. 당초 삼성전자 팀이 226군데로 봤던 약품 누액 지점이 400곳 이상으로 늘어난 데도 대덕전자 직원들의 역할이 컸다.

생산직은 물론 사무직 직원들도 각자 맡을 기기를 정해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청소했다. PCB 제조 등 회사 주요 사업에 대한 사무직 직원들의 이해도도 크게 높아졌다. 약품 누출을 관리하던 직원들의 업무도 크게 줄어 13명이 하던 일을 7명이 할 수 있게 됐다. 직원들이 공장 안의 휴게실과 식당 등을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덤이다. 김 사장은 “기계 소리와 냄새가 조금만 이상해도 문제를 쉽게 파악할 수 있어 생산성과 수율이 오르고 사고율은 크게 낮아졌다”고 말했다.

다음달 열리는 5회 환경안전혁신대회에서는 대덕전자가 400여 개 삼성전자 협력사를 대상으로 개선 성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김행일 글로벌EHS센터장(전무)은 “협력사의 생산라인은 사실상 삼성전자의 제품을 만드는 첫번째 공정”이라며 “앞으로도 국내외 협력업체들을 대상으로 개선 활동을 지속적으로 벌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흥=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