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연합군 '유리한 고지' 재확보… 박정호 "도시바 인수, 포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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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치락뒤치락 '도시바 인수전'“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컨소시엄이 다시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하지만 협상 판도가 수시로 바뀌고 있어 결과를 낙관하기가 쉽지 않다.”
세번째 바뀐 판도…최종 결과는 '안갯속'
신 미·일 연합 웨스턴디지털 경영권 노리자
일본 매각측 다시 한·미·일 연합으로 급선회
도시바가 13일 발표한 반도체 자회사 도시바메모리의 향후 매각 방침을 전해들은 국내외 투자은행(IB)업계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도시바는 이날 이사회에서 “이달 말까지 도시바메모리 경영권 매매 협상을 하는 양해각서(MOU)를 한·미·일 컨소시엄과 맺었다”고 밝혔다. 당초 일본 언론에서는 도시바와 낸드플래시 사업을 합작하는 웨스턴디지털이 포함된 신(新)미·일 컨소시엄이 인수 후보로 정해질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랐지만 정반대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렇게 매각 판도가 크게 바뀐 게 지난 5월 본입찰 이후에만 세 번째다.◆일본, 왜 이렇게 변덕스럽나
당초 일본 정부는 미국계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주도하고 일본의 관민펀드인 산업혁신기구와 일본정책은행 등 재무적투자자(FI)가 주축이 된 미·일 컨소시엄을 선호했다. 하지만 미국 베인캐피털과 한국의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컨소시엄 측이 도시바 측이 원하는 수준인 2조엔(약 20조5000억원)으로 인수 가격을 끌어올리자 6월 말 한·미·일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곧 매매계약서를 체결할 듯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7월 중순 갑자기 협상 분위기가 돌변했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메모리 지분을 취득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 내에서 한·미·일 컨소시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웨스턴디지털을 투자자로 끌어들인 신미·일 연합이 유력 후보로 급부상했다.하지만 물밑에선 웨스턴디지털이 향후 도시바메모리의 경영권을 인수하기 위해 주식 인수를 고집하면서 협상이 교착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한·미·일 컨소시엄이 도시바 측에 새로운 인수조건을 제안하면서 매각 판도가 다시 틀어졌다. 제안의 핵심내용은 도시바 인수가격 2조엔과 별개로 연구개발(R&D)과 시설 투자 등으로 4000억엔(약 4조1000억원)을 추가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금융부채 때문에 대규모 설비 투자를 제때 하지 못했던 도시바메모리의 현 경영진이 반색할 만한 내용이었다. 여기에 도시바메모리의 핵심 고객인 미국의 애플을 컨소시엄의 투자자로 끌어들인 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최종 인수까지는 첩첩산중
그럼에도 조단위가 넘는 대형 인수합병(M&A)의 협상 대상자가 이처럼 오락가락 바뀌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도시바 매각을 둘러싼 이해 관계자들의 생각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도시바로부터 빚을 회수해야 하는 채권단은 인수가격 극대화를 주장하지만 일본 정부는 가격 변수보다 해외 기술 유출을 방지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반면 도시바메모리의 현 경영진은 회사의 중장기 발전을 지원할 기업을 선호한다.
앞으로 협상 결과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도시바 측이 협상 시한을 이달 말로 못 박은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도시바는 내년 3월까지 매각을 마무리하지 못할 경우 상장폐지당할 가능성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한·미·일 컨소시엄 내 다양한 투자자의 이해 관계를 조율하는 게 쉽지 않은 과제로 지목된다. 한·미·일 컨소시엄 인수 구조는 의결권 지분을 베인캐피털이 49.9%, 도시바가 40%, 일본 기업이 10.1% 가져가는 구조다. 일본으로선 지분을 50.1%로 맞춰 해외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를 덜었다.
하지만 베인캐피털과 같은 FI들은 3년 후로 예상되는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이 과정에서 SK하이닉스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놓고 내부에서 결론을 내지 못한 상황이다. SK 측의 인수 의지는 여전히 강력하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12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이동통신박람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아메리카 2017’에 참석, 기자들을 만나 “반도체 시황이 너무 좋아 우리도, 웨스턴디지털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미·일 컨소시엄으로 매각에 반대하는 웨스턴디지털도 협상 결과를 좌우할 주요 변수다. 한·미·일 컨소시엄은 웨스턴디지털을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이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좌동욱 기자/샌프란시스코=송형석/도쿄=김동욱 특파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