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책 속으로] 미술비평가 홍경한 씨 "건축주에게 예술 강요? 도시 미관만 해칠 것"

공공미술, 도시를 그리다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이 지나다니는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빌딩 앞에는 서울 시민에겐 꽤 익숙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묵묵하게 망치질하는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해머링 맨’이다. 도시인들의 성실함과 노동의 신성함을 상징하는 이 작품은 서울이란 도시 특성에 절묘하게 스며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도시 어디에서나 미술 조형물을 흔히 볼 수 있는 시대다. 국내에 설치된 공공미술 작품은 1만5000여 점에 달한다. 미술비평가 홍경한 씨(사진)는 《공공미술, 도시를 그리다》(재승출판)에서 도시에 설치된 수많은 공공미술 작품 중 38점을 꼽아 각각이 지닌 역사와 의미,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풀어냈다.
홍씨는 “공공미술은 공공 공간의 주인인 시민을 아우를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 청계천이 시작되는 지점에 설치된 ‘스프링’은 그런 의미에서 ‘실격점’을 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나선형으로 길쭉하게 솟은 이 작품은 한국에서 공공미술 워스트(최악) 리스트를 꼽을 때마다 거의 1위를 놓쳐본 적이 없는 기록을 갖고 있다. “근대 서민들의 생활터전이던 청계천이라는 장소의 특징을 작품에서 찾기 힘들어요. 작가인 클라스 올든버그가 이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 청계천을 한 번도 찾지 않고 만들었으니 그럴 법하죠.”

홍씨가 최고로 꼽는 공공미술은 전북 고창의 ‘돋음볕마을’이다. 마을 곳곳에서 미당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를 주제로 삼고 그린 간판과 벽화를 만날 수 있다. “100여 개가 넘는 국내 벽화 마을과 이 마을이 다른 점은 주민 스스로가 공공미술을 완성하는 데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장소의 주인이 직접 그림을 구상하고 완성했다는 점에서 공공미술이 지녀야 할 공공성을 십분 실현했다고 봅니다.”최근엔 길거리 미관을 해치는 ‘함량 미달’ 작품도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홍씨는 “1만7000여 개의 작품 중 70%는 정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건축비 중 일정액을 공공미술 설치에 사용하거나 기금을 출연하도록 한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 때문이다. 홍씨는 법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건축주에게 ‘예술을 하라’고 강요하니 형식적인 작품만 나와요. 거기에다 리베이트 관행에 따라 계약을 따내는 ‘꾼’들까지 판치니 대부분 최소 단가로 흉내만 낸 예술작품이 도시 곳곳에 들어서면서 오히려 경관을 해치고 있습니다. 도시 미관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예산을 들여 해결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를 기업과 자산가에게 강제한다면 볼썽사나운 미술작품을 계속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