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율 억누르면 혜택 줄어 카드 덜 쓰고…최고금리 낮추면 저신용자 사금융 내몰려

'착한 규제'의 역설 - 금융 규제

빚 탕감에 도덕적 해이 땐 대출 심사는 더 깐깐해져
금융회사의 금리나 수수료 등 가격에 대한 정부 규제가 오히려 금융소비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질 조짐이다.

정부는 지난달부터 카드가맹점이 카드사에 수수료를 낼 때 우대수수료율이 적용되는 가맹점 범위를 영세가맹점(수수료율 0.8%)은 연매출 2억원 이하에서 3억원 이하로, 중소가맹점(수수료율 1.3%)은 연매출 2억~3억원에서 3억~5억원으로 각각 확대했다. 이에 따라 영세·중소가맹점은 연간 3500억원 규모의 수수료를 아낄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문제는 수수료 수입이 줄어드는 카드사가 각종 소비자 부가서비스를 줄이겠다고 한 점이다. 카드사 관계자는 “계약 만기가 돌아오는 부가서비스 중 비용이 많이 드는 서비스부터 만기 연장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가서비스가 줄면 금융소비자의 카드 사용 유인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소비침체로 이어져 영세·중소가맹점의 매출마저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또 대부업자와 카드·캐피털사 등 여신금융회사에 적용되는 법정 최고금리를 연 27.9%에서 내년 1월 연 24%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고금리 대출 이용자의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의도지만 수익성이 떨어지는 대부업자나 여신금융회사가 아예 대출을 줄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신용등급이 낮은 소비자에게 적정한 수준의 이자를 받지 못하면 대출 자체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금융업계 분석이다. 지난 7월 대부금융협회 조사 결과 최고금리가 낮아지면 신규 대출자 수는 34만 명가량 줄어들 것으로 분석됐다. 그만큼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우려가 커지는 것이다.

금융권 빚 탕감 정책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난달 공공부문의 소멸시효(5년) 완성 채권 21조7000억원어치(123만1000명)를 소각한 데 이어 민간부문도 연체채권 4조원어치(91만2000명)를 소각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도덕적 해이에 따라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대출 심사가 더 깐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