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칭다오 맥주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중국 산둥반도의 칭다오(靑島)는 ‘중국 속 독일’로 불린다. 붉은 기와 지붕들이 독일의 여느 도시를 연상케 한다. 중국답지 않은 풍광이지만 그 이면엔 뼈아픈 역사가 숨어 있다.

1897년 독일 선교사가 중국 의화단에 살해된 것을 빌미로 독일제국 함대가 칭다오 내해(內海)인 자오저우만(膠州灣)을 점령했다. ‘종이 호랑이’ 중국은 화친 조건으로 칭다오를 99년간 조차지로 내줬다. 독일은 작은 어촌이던 칭다오에 동양함대 기지를 건설했다. 이에 자극받은 러시아가 남진해 러·일전쟁이 터졌고, 5년 뒤 조선은 나라를 잃었다.홍콩(영국), 마카오(포르투갈)와 달리 독일의 칭다오 지배는 길지 못했다. 1914년 1차 대전 때 일본이 공격해 점령해 버렸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패전국 독일의 이권이 일본에 넘어가면서 칭다오도 일본 지배로 편입됐다. 이것이 ‘중국판 3·1운동’인 5·4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독일이 17년간 지배하며 남긴 유산이 무역항과 맥주다. 맥주 종주국답게 독일인들은 1903년 독일서 맥주설비를 들여와 물 좋기로 유명한 동쪽 라오산 광천수로 칭다오 맥주를 만들었다. 1906년엔 세계맥주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유명해졌다.

칭다오 맥주는 단일 브랜드론 중국 저가 스노(雪花) 맥주에 이어 세계 2위지만, 해외 인지도는 압도적이다. 칭다오 국제맥주축제는 독일 옥토버페스트, 일본 삿포로 맥주축제와 더불어 3대 축제로 떠올랐다. 중국은 1인당 맥주 소비량이 많진 않지만 생산량과 소비량 모두 1위다. 세계 톱10 브랜드 중 스노, 칭다오, 옌칭(6위), 하얼빈(9위) 등 중국산이 4개나 된다.한국에 칭다오 맥주가 들어온 것은 밀러(미국), 하이네켄(네덜란드)뿐이던 1990년이다. 꾸준히 성장하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양꼬치엔 칭다오’가 유행가처럼 번지며 소비가 급증했다. 이마트의 지난 1~8월 칭다오 맥주 판매액이 전년 동기보다 28.8%나 급증했다고 한다. 한때 수입맥주 중 1위에 올랐고, 올해 누적 매출로도 4위다. 칭다오를 비롯한 중국산 맥주 수입량도 최근 6년 새 7배 이상 늘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항해 중국산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여론도 있다. 그러나 이미 ‘중류(中流)’라고 부를 만큼 양꼬치부터 드론까지 중국산에 꽂힌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중국인의 편협한 국수주의는 지탄받을 만하다. 하지만 국가 간 갈등이 고조돼도 문화·소비 트렌드 변화를 억지로 막을 순 없다. 젊은 층 소비 기준은 국적보다 ‘가성비’다.

한국인이 칭다오와 아사히 맥주를 마시고, 중국·일본인이 한류를 즐길수록 미래의 3국 간 거리는 좁혀질 것이다. 싫다고 멀리 이사 갈 수도 없지 않은가.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