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재건축 35층과 신고리 원전 5·6호기

'시민참여단' 결정은 논란만 낳을 뿐
문외한의 단기 논의, 해법될 수 없어
다양한 전문가 목소리 중심에 둬야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요즘 부동산시장의 핫이슈는 단연 잠실주공5단지일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한 2011년 이래 처음 허용되는 초고층 아파트 계획이다. 조합이 서울시가 요구한 ‘광역중심지’로서의 기능을 대부분 받아들여 가능한 일이었다고 하지만 50층을 넘어섰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동산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가히 메가톤급이라 하겠다.

서울시가 3종 일반주거지역의 주택 높이를 35층 이하로 엄격히 제한해온 것은 2014년 발표한 도시기본계획 ‘2030 서울플랜’에 근거한다. 도시기본계획이란 도시관리계획의 상위 개념이다. 여건 변화에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포괄적으로 수립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법에도 없고 위임조차 되지 않은 35층이라는 구체적인 규제를 기본계획에 명시해 모든 재건축단지를 일괄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딱히 무슨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시는 이렇게 설명한다. 용도별 용적률의 비례성을 분석했을 때 35층 정도가 수용 가능한 숫자라고, 경험적으로 봐도 적절한 층수라고 말이다. 그런데 제시한 구체적인 근거는 하나도 없다. 이토록 주관적이다 보니 대상자들이 납득할 리 없다. 국회 입법조사처조차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일 뿐이라고 분명히 선을 그은 규제다. 전 세계 어디에도 이런 규제는 없다.

박 시장 얘기는 다르다. 2030 서울플랜은 최상위 법정 도시계획이며 대학생에서 노인, 여성 청소년 장애인 등 다양한 시민이 참여해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든 ‘헌법’ 같은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 계획에 35층 규제가 담겨 있는데 시장이라고 어쩔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시장이 결정한 적이 없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가 늘 언급하는 것이 소위 ‘시민참여단’이다.

시민참여단이 어떻게 2030 서울플랜을 만들었다는 것일까. 무작위로 선발된 100명이다. 이들이 모인 기간은 고작 나흘이다. 처음 모여 오리엔테이션과 교육을 받았고, 보름 뒤 다시 모여 교육과 토론을 했다. 그리고 다시 20일 뒤 모여 1박2일간 이슈별 찬반토론을 거친 뒤 시민제안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전문가들이 아니다. 선거로 뽑은 국회의원이나 시의원은 더더욱 아니다. 문외한 100명이 모여 며칠간 배우고 토론한 내용이 1000만 서울 시민의 미래 비전이 됐다. 믿어지는가. 모든 작업은 서울시가 짜놓은 각본대로 진행됐을 것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그래도 박 시장은 모든 것은 시민이 만든 헌법이라고 말한다. 35층도 결국 시민이 만든 규제라는 것이다.하지만 2030 서울기본계획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문제로 접수된 의견 192건 중 층수 규제와 관련한 내용은 단 한 건도 없다고 한다. 100명의 참여단은 35층의 내용을 알고나 있을까. 시민참여단으로 봉사한 분들의 노력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다. 비전문가들에게 전문적인 내용을 결정토록 하고 그 결과를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게 과연 옳은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그 뒤로 시민참여단 붐이다. 여성친화도시 시민참여단, 해양친수도시 시민참여단, 스마트시티 시민참여단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지자체가 결정하기 껄끄러운 내용을 시민을 동원해 합리화하는 작업이라고 오해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번엔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에너지 정책이다.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 여부를 사실상 결정할 시민참여단이 며칠 전 첫 모임을 하고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은 지역별로 한 차례씩의 토론과 e러닝 학습 후 10월 중순 2박3일간의 합숙토론회 뒤 정부에 권고안을 낸다. 2030 서울플랜 일정을 꼭 닮았다.한 나라의 에너지 정책 결정권이 500명의 문외한에 의해 결정된다. 대부분이 원전이나 신고리 5·6호기를 알지 못한다. 건전한 상식이 판단의 잣대가 될 것이라지만 전문 지식을 도외시한 상식이 유효한지 궁금할 뿐이다. 시민 500명이 짧은 기간에 자료집이나 e러닝으로 지식을 익히고 며칠 되지 않는 모임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라면 전문가들이 왜 필요하겠는가.

이들이 정부가 기대하는 결론을 낼지, 그 반대일지는 알 수 없다. 문제는 어떤 결론이 나오든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파급 영향이 2030 서울플랜 정도가 아니다. 국가 에너지 대계다. 지금이라도 전문가들을 논의의 중심에 서게 해야 한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