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술값 1700만원'… 만취 외국인에 바가지

정신 잃자 6차례 카드 긁어

약물 넣었을 가능성 등 수사
지난해 6월30일 한국을 찾은 미국인 A씨는 서울 이태원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다음날 미국으로 돌아간 A씨는 2개월 뒤 그 가게에서 여섯 차례에 걸쳐 총 1700여만원이 결제된 신용카드 대금 청구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날 A씨가 해당 업소에 머문 시간은 1시간30분에 불과했다.

술에 취한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술값을 과다하게 청구해온 업주 등 일당이 적발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광경찰대는 준사기 혐의로 업주 이모씨(42)와 엄모씨(55)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1일 발표했다. 준사기는 10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경찰에 따르면 이씨 등은 이태원에서 외국인 전용 술집을 운영하며 술에 취한 외국인의 신용카드로 여러 차례에 걸쳐 술값을 계산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 외에 올해 초 독일인 관광객 B씨 역시 한 시간 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790만원이 술값으로 결제됐다. 이런 수법에 당한 피해액은 지금까지 경찰이 확인한 것만 총 2490만원에 이른다.

피의자들의 주 타깃은 혼자 술을 마시는 외국인 관광객. 경찰은 피해자들이 모두 한 시간 안팎의 짧은 시간 안에 의식을 잃었고, 독일인의 모발에서 졸피뎀 등 수면제 성분이 검출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 주점에서 피해자들이 마신 술에 약물을 탔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압수수색 결과 해당 주점에서 졸피뎀 등 약물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같은 수법으로 외국인 관광객에게 술값을 바가지 씌우는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