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中,누가 거짓말하나…인민은행 北금융제재 놓고 진실공방

트럼프, 시진핑에 제재 감사 인사까지 했는데…中 외교부 "사실 아냐"
中 오리발 내밀기인가 vs 트럼프 맘대로 기정사회화인가…논란 증폭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북한과의 신규거래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금융제재를 일선 은행에 통보했다는 보도와 관련, 미국과 중국이 완전히 상반된 입장을 보이면서 진실공방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논란의 시작은 로이터 통신이 한국시간으로 21일 저녁 시간대에 인민은행이 일선 은행에 북한과 신규거래 및 대출 규모를 축소하라는 통지를 내렸다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뉴욕 현지시간으로 21일 문재인 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가진 한미일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 북한과 무역거래를 하는 외국은행과 기업, 개인을 겨냥한 새 대북제재 행정명령을 발표하면서 이 같은 사실을 재확인하자 로이터의 관련 보도는 기정사실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매우 대담한 조치를 이행한 데 대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감사한다"며 "다소 예상치 못한 조치였다.감사하게 생각한다"고 거듭 감사 인사까지 전했다.

특히 미국의 새 행정명령이 발표된 것과 맞물려 인민은행의 금융제재가 알려지면서 미중 간 '사전협의'가 있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여기에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도 같은 날 오후 관련 기자회견에서 '다른 나라 정부 등과 어떤 논의가 (사전에) 이뤄졌는지 설명해달라'는 질문을 받고 "오늘(21일) 아침 일찍 중국 인민은행의 저우샤오촨(周小川) 행장과 앞으로 우리가 함께 협력할 방안 등에 대해 '매우 생산적인 대화'(a very productive conversation)를 나눴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중국 외교부가 인민은행의 대북 금융제재를 전면 부인하고 나서면서 이번 조치의 진위에 논란이 일고 있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두 차례나 관련 보도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특히 루 대변인은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과 핵 프로그램에 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를 엄격하고 정확하게 이행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중국이 안보리 결의를 넘어서는 독자제재를 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했다.인민은행 홈페이지에도 관련 조치에 대한 통지는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발표와 트럼프 대통령 및 므누신 장관의 발언 은 상반된다.

이를 두고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화법에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이 종종 상대를 압박할 때 자신이 원하는 일을 기정사실로 해서 사전에 발표하는 특유의 화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그런 화법을 구사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28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친 후 한 기자회견에서 핀란드가 미국제 전투기를 대량 구매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감사를 표한 바 있다.

그러나 니니스퇴 대통령과 핀란드 정부는 이에 대해 "그런 계획이 없다"고 해명에 나서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부인했다.

반대로 관련 보도가 구체적이고, 므누신 장관과 저우 행장이 실제 전화통화를 한 정황 등을 고려하면 이번 조치가 실제로 이뤄졌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도 어렵다.

관련 보도에는 신규거래 중단뿐 아니라 현재 대출 규모를 줄일 것과 북한 고객에 이번 조치가 시행되는 이유를 설명하라는 권고까지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됐다.

므누신 장관이 "그들(중국 인민은행)이 오늘 한 조치는 우리의 대화의 결과"라고 밝힌 점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 때문에 중국이 저우샤오촨 인민은행 총재를 시켜 므누신 미 재무장관에게 대북제재를 사전협의하고도, 오리발 내밀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미국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 이외에 독자제재를 요구하는 점을 고려해 중국이 나름대로 자국 은행들의 대북 신규거래 금지 조처를 준비했다가, 미국의 대중 강경제재 조치에 화가 나서 접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다시 말해 트럼프 미 행정부가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개인·기업·금융기관을 상대로 한 대북 독자제재 행정명령을 강행한 데 대한 반발로 중국이 인민은행의 대북제재 계획을 세웠다가 '없던 일'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중국이 미국의 뜻에 따라 대북압박을 높이는 데 불만을 표시하는 북한을 의식한 행동으로도 볼 수 있다.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지금까지 상황으로 봤을 때 양측의 입장이 워낙 상반되기 때문에 진위 판단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면서 "일단은 중국당국의 반응에 대한 미국 측의 재반론을 들어봐야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베이징연합뉴스) 김진방 특파원 china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