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위서 한수원 빠져라" 정부 개입 논란…원전 찬성측 "보이콧"

반원전 시민단체 요구에…산업부, 한밤중 공문 발송
"한수원은 적의조치 해달라"

원전 건설 찬성 측은 반발
"중립 지키겠다던 정부, 전문가 배제로 공정성 훼손"
신고리 5·6호기 건설 찬성 측을 대표하는 한국원자력산업회의 강재열 부회장(가운데)이 24일 서울역 별실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공론화위원회가 건설 중단 측 의견을 옹호하고 있다”며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킬 것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건설 찬성 측으로 참여 중인 한국수력원자력과 국책 연구기관에 “활동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공론화 과정에 개입하지 않겠다던 정부가 약속을 깨고 중립을 지키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 찬성 측은 “공정성이 지켜지지 않은 상황에선 토론회 등 공론화 과정에 참여하는 게 의미가 없다”며 ‘보이콧’까지 검토하고 있다.

◆“한수원 빠지라고 정부가 압력”
신고리 5·6호기 건설 찬성 대표단체인 한국원자력산업회의 관계자는 24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사실상 한수원과 정부 출연기관의 건설 찬성 측 활동 중단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앞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지난 20일 산업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건설 반대 측에서 한수원과 정부 출연기관의 활동 중단을 요구하고 있으니 이에 대한 유권 해석을 내려 공론화위에 알려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산업부는 이틀 뒤인 22일 밤 11시께 산하기관인 한수원과 에너지경제연구원에 “공론화의 공정성이 유지되도록 관련 규정에 따라 적의조치 해달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건설 찬성 측은 산업부 공문이 사실상 한수원과 에너지경제연구원의 공론화 과정 참여 중단을 지시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원자력산업회의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산업부 공문에 명시적으로 참여를 금지한 조항은 없다”며 “하지만 정부가 공문을 보냈을 때 산하기관이 이를 쉽게 생각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한수원과 에너지경제연구원에 공론화 과정 참여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위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또 다른 산업부 관계자는 “아무 의미도 없는 공문을 산하기관에 보냈겠느냐”고 했다.

◆“두 전문가 참여 막으려는 것”

당초 한수원의 참여 반대를 공론화위를 통해 문제 제기한 곳은 건설 반대 대표단체인 ‘안전한 세상을 위한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시민행동’이다. 시민행동 관계자는 “건설 찬성 측과 언론에서 정부가 공론화 과정에 개입하지 말라고 요구하지 않았느냐”며 “공공기관도 정부의 일부이기 때문에 빠지는 게 형평성에 맞다”고 주장했다.원자력산업회의 관계자는 “건설 중단 측의 이 같은 요구는 사실상 임채영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정책연구센터장과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자력정책연구실장을 토론회에 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두 사람은 국내에서 원전에 관해 가장 해박한 지식이 있는 분들이란 평가를 받는다”며 “이들의 참석을 막지 못하면 토론회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노 실장은 25일 울산에서 열리는 공론화위 주최 토론회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산업부 공문을 받은 뒤 참석을 포기했다. 공론화위는 울산 토론회를 연기하기로 했다. 과기정통부는 아직 원자력연구원에 공문을 전달하지 않았지만 임 센터장은 산업부와 같은 내용의 공문이 온다면 앞으로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원자력산업회의는 기자회견에서 “국가 주도이던 원자력산업 특성상 전문가들이 대부분 공기업 및 출연기관에 속해 있다”며 “이들을 제외하면 국민과 시민참여단에 전문 정보와 의견을 제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공론화위 관계자는 “상급 기관이 ‘잘 생각해 행동하라’는 공문을 보내면 산하기관으로선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안다”며 “양측 의견을 조율해 앞으로 토론회 등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게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