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FROM 100] "통상임금 혼란 피하려면 임금체계부터 단순화해야"

새 정부에 바란다 - 임금체계 개편

복잡한 임금체계가 노사갈등 조장
통상임금·신의칙 법적 기준 달라
1·2심 판결 롤러코스터 타고 있어
"노사 합의가 우선돼야" 의견도

하이브리드형 임금체계 도입을
수당만 300여개…기형적 구조
새로운 고용형태 늘어나고 있어
성과·직무 중심 '임금트렌드' 찾아야
민간 싱크탱크 FROM 100과 한국경제신문사는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임금체계의 개편 필요성과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조성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FROM 100 대표),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최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통상임금 소송에 따른 사회 혼란을 줄이기 위해선 임금 체계를 글로벌 기준에 맞게 단순화해야 합니다.”(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FROM 100 대표)

“통상임금 법제화를 하되 노사합의를 우선 인정해야 합니다.”(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민간 싱크탱크 FROM 100과 한국경제신문사는 지난 19일 ‘임금체계의 개편 필요성과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경제·노동 전문가들은 “한국 특유의 복잡한 임금 체계가 노동시장의 혼란과 노사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새로운 고용형태 등을 고려해 미래지향적인 임금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상임금 노사 합의 중요”

통상임금이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통상임금은 연장근로, 휴일근로 등에 대한 가산임금을 정할 때 기준이 되는 임금이다. 과거엔 기본급을 통상임금과 동일하게 여겼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상여금과 각종 수당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며 잇따라 소송을 제기하면서 통상임금 범위가 논란이 됐다. 지난달 기아자동차 노조는 통상임금을 둘러싼 1심에서 승소했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통상임금의 모호한 법적 정의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 교수는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을 보면 통상임금은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을 갖춘 근로 대가라고 했지만 아직도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며 “예컨대 일본 노동기준법엔 통상임금은 ‘한 달마다’ 주는 임금이라고 적시돼 있는데 우리는 따로 기준이 없어 2~3개월마다 주는 상여금도 정기성을 갖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도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의칙은 임금 협상 당시의 노사 합의와 노사 신뢰관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법원은 신의칙을 토대로 회사에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이 있으면 근로자들의 추가 임금 지급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박지순 교수는 “신의칙 여부에 따라 1, 2심 판결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며 “현대중공업, 아시아나항공 등은 1심에선 노조가 승소했고 2심에선 회사가 이겼다”고 말했다.박 교수는 “혼란을 줄이기 위해선 노사 합의를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임금은 기업과 업종, 규모에 따라 다르게 정해지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규율하는 게 어렵다”며 “법제화된 부분을 디폴트값(초기 상태)으로 하되 노사 합의를 우선한다고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월급 중 기본급 비중 57%에 불과

기본급에 비해 상여금과 각종 수당의 비중이 높은 기형적인 임금구조가 통상임금 소송의 발단이 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근로자 100인 이상 사업장 1000곳을 조사한 결과, 전체 월급 중 기본급 비중은 57.3%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상여금, 각종 수당 등이었다. 가족수당, 명절수당, 김장수당 등 각종 수당은 300여 개에 달했다.이 교수는 “고성장 시기에 물가상승률을 낮추기 위해 정부가 기업에 임금상승률을 억제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줬다”며 “이로 인해 기본급만 올리고 다른 수당을 신설하는 방식의 현행 임금체계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본급에 포함되지 않는 식대 등 복리후생적 임금에는 정부가 비과세 혜택을 줬다”고 말했다.

복잡한 임금 체계를 단순화해야 한다는 게 공통된 목소리다. 정갑영 전 총장은 “세계적으로 근로·임금 형태가 다양해지는데 법과 제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임금 체계도 글로벌 기준에 맞게 기본급, 성과급 등으로 단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남식 전 연세대 의료원장도 “의료원에 1만3000명이 근무하고 다양한 직종의 근로자가 있다”며 “통상임금을 상여금, 수당 등으로 복잡하게 따지기보다 ‘과세소득(taxable income)’과 같이 단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 바꿔야

고령화와 정년연장, 고용형태 변화에 따라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를 성과와 직무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데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 교수는 “정년연장으로 노동 생산성과 임금 격차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며 “호봉제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확대하고 기업의 생존과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정부가 도입을 추진하는 직무급제가 또 하나의 경직적인 임금 체계가 될 우려가 있다”며 “새 임금체계는 호봉제나 직무급처럼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하이브리드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은 “미국에선 직무급제가 빠르게 변하는 경영 환경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며 “시급 성격이 강한 임금보다는 결과물에 따라 보상하는 개념으로 임금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도 “특수형태근로 종사자 등과 같은 새로운 고용형태가 늘어나는 만큼 시장이 적절한 임금 체계를 찾아가도록 놔둬야 한다”고 말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