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비법 통과땐 영화산업에 손해" vs "이대로 가면 영화계 고사"

한국영화기자협회 주최 영비법 토론회 열려
"영비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한국영화 산업에 손해를 끼칠 것이 분명하다."(CGV)
"이대로 가다가는 몇 년 안에 영화계는 고사한다."(정윤철 감독)대기업의 수직계열화(배급·상영 겸업)와 스크린 독과점 문제 등 영화계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영화인들이 머리를 맞댔다.

한국영화기자협회(회장 김신성) 주최로 28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영화, 어디쯤 가고 있는가-영비법 개정 이후를 경청하다' 토론회에서다.

배우 정진영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회에서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국회 계류 중인 영비법 개정안은 대기업이 영화 상영과 배급을 분리하도록 하자는 것이 뼈대다.

소수의 대기업이 제작·투자·배급·상영 등을 독점해 '자사 영화 밀어주기' 등 불공정한 거래 관행을 고착시키고 있다는 문제 제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작사 JK필름과 투자·배급사 CJ E&M, 멀티플렉스 CGV를 운영하는 CJ그룹과 롯데엔터테인먼트·롯데시네마를 운영 중인 롯데그룹은 부정적인 목소리를 냈다.조성진 CGV 전략지원담당은 "대기업이 극장을 포기하면, 안정적인 유통망을 미리 확보하지 못하게 돼 영화 투자에 대한 리스크가 더욱 커져서 투자 심리가 위축될 것"이라며 "결국 영화 투자 및 제작 전체가 침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사 영화 밀어주기' 논란에 대해선 "극장은 이익 극대화를 위해 고객이 가장 많을 찾을 만한 영화를 상영할 뿐"이라며 "올해 유일하게 1천만 명을 넘은 영화도 경쟁사인 쇼박스의 '택시운전사'였다"고 말했다.

김무성 롯데엔터테인먼트 팀장은 "한국 영화산업 문제점의 원인을 기업의 소유나 수직계열화에서 찾을 것인지, 아니면 시장의 소비자 변화나 경쟁상황 등 다른 원인에서 찾아야 하는지 먼저 검증부터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승호 KTB 상무는 "투자배급사업은 자체 자금력과 양질의 인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지속하기 어려운 사업"이라며 "CJ와 롯데가 배급을 포기하게 되면 이를 대체할 세력도 결국 다른 대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대립군'을 연출한 정윤철 영화감독은 "이대로 몇 년 가면 영화계는 고사해 '홍콩 꼴' 나며, 극장도 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감독은 "대기업 투자 배급사들은 '슈퍼갑'인 극장의 스크린 독과점을 방치, 동조해왔다"며 "대기업은 투자만 하도록 하고, 배급은 전문적인 유통업자에 맡겨서 내부자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광현 영화사 하늘 대표도 "수직계열화가 가장 큰 독과점을 불러일으킨다"면서 "다만 투자위축 등을 감안해 점진적, 단계적인 수직계열화의 해체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부산행'의 제작사인 레드피터의 이동하 대표는 "다양성 확보를 위해서는 배급·상영 분리보다는 투자와 제작 분리가 시급하다"고 지적했고, 고영재 인디플러그 대표도 "자유로운 시장 진·출입을 위해서라도 배급과 상영은 분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회에서는 특정영화의 스크린 독과점 방지, 멀티플렉스 내 예술·독립영화 전용 상영관 의무 설치 등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나왔다.

조성진 CGV 전략지원담당은 "인위적인 스크린 수 조율은 대작을 보고 싶어하는 더 많은 관객의 선택권을 박탈하고, 1위 영화를 규제할 경우 차상위인 2, 3위 영화가 스크린을 나눠 먹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상진 엣나인필름은 대표는 "올여름 극장 관객이 400만명 이상 줄어든 것은 특정영화가 중요 시간대를 장악하면서 관객들이 볼 영화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군함도'로 인해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불거지면서 영화계에 대한 피로도가 쌓인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다만, "다양성 영화가 활성화되려면 개성이 넘치는 고유 공간이 많아져야 한다"면서 "멀티플렉스 내 독립예술영화관을 의무화하기보다는 공공기관과 개인들이 독립예술영화관을 설립할 수 있는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