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하버드MBA의 이색 수업…"강의실 지식, 현장에서 써라"

하버드 실천 수업

야마자키 마유카 지음 / 황선종 옮김 / 마일스톤 / 280쪽 / 1만5000원
2015년 1월, 세계 최고의 경영대학원인 하버드비즈니스스쿨(HBS) 학생 다섯 명이 일본 도호쿠 지방을 찾았다. 오랫동안 전통을 이어온 수산가공품 회사 사이키치 상점을 방문해 3일간 컨설팅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서다. 이 회사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지진해일로 본점과 공장이 모조리 휩쓸려 갔지만 몇 개월 뒤 온라인 판매를 통해 다시 일어섰다. 학생들은 인근 지역에서 자원봉사 활동도 하고, 견학도 하고, 기업가들에게 컨설팅을 했다. 재해 뒤에 도호쿠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배우고 도호쿠의 재건에 힘을 보탰다.

사이키치 상점을 방문한 다섯 명은 HBS의 2학년 수업으로 일본에 왔다. 재팬 IXP(immersion experience program)라는 이 수업은 도쿄와 도호쿠에서 1주일씩 머물며 배우는 현장 프로그램이다. HBS는 1908년 창립 이래 100여 년에 걸쳐 ‘케이스 스터디’를 이용해 수업을 했다. 케이스 스터디는 학생들이 특정 조직이 안고 있는 구체적인 과제를 기술한 사례집을 읽고 토론하며 배우도록 하는 교수법이다. 이 방법은 지식을 늘리는 데는 큰 도움이 됐지만 기술이나 능력 개발로 이어지도록 실천하는 기회를 주지 못했다. 경영자로서의 가치관이나 신념을 깨우치는 데도 도움이 안됐다.HBS는 지식이 아니라 실천하는 능력을 배울 수 있는 ‘필드 스터디’를 2011년 본격 도입했다. 2005년 8월 미국 뉴올리언스를 덮쳐 180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아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이 과목에서 학생들은 모르는 국가나 재해지역 등 평소에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상황에 스스로 몸을 던져 자신을 알아가는 법을 배운다.

《하버드 실천 수업》은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매년 이뤄지고 있는 필드 스터디 프로젝트인 재팬 IXP 이야기다. HBS 학생들은 삶의 터전이 무너진 후에도 굴하지 않고 사업을 일궈가는 지역 기업인들을 만났다. 이들은 도호쿠에 가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오전에는 몸을 써서 비즈니스 현장에 가서 일을 하고, 오후에는 그 사업가가 안고 있는 과제에 대해 학생들이 토론하고 해결 방법을 제안한다.학생들은 국화·토마토 농가, 해변 카페, 트레일러 숙박시설, 니트 제조사 등 다양한 기업들을 찾았다. 260년 역사의 일본전통주 회사에 방문해서는 역사와 전통을 유지하면서 혁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해일로 파괴된 해변을 되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카페에서는 ‘벽촌에서 지속가능한 사업은 무엇인가’라는 난제에 대해 고민한다. 도호쿠의 부흥을 위해 설립된 와이너리에서는 사업의 성장과 지역 사회와의 조화에 대해 몸으로 익힌다. 이들은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당한 후쿠시마의 고등학교를 찾아 교류하면서 어린 학생들이 이전보다 큰 꿈을 꾸도록 북돋아 주기도 한다.

기업인들과 주민들은 HBS 학생들이 제안한 아이디어가 바로 도움이 됐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학생들과 하나 돼 생각하는 자리를 가진 것 자체가 크게 자극이 됐다고 전한다.

단순한 경영학 수업을 넘어 지역 주민과 학생들은 서로 응원하는 관계를 맺은 것이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비즈니스의 본질과 리더십이란 무엇인지 알아간다. HBS 학생들과 도호쿠 기업인들의 시너지는 희망을 잃지 않고 내일을 일궈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교훈을 준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