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말이고 나의 글"…고은 대담집 '고은 깊은 곳'

“시가 나에게 오고 내가 오는 시를 마중 나가서 우리는 함께 날 저문 귀로로 돌아온다네. 임산한 아낙처럼, 부상당한 전사처럼, 목마른 혼백처럼, 그것이 내 시의 밤이 되는 것이네.” 1958년 시인 생활을 시작해 내년이면 시(詩)력 60년인 시인 고은의 삶과 생각, 시 세계를 탐색할 수 있는 책이 출간됐다. 소설가이자 시인 김형수와 고은이 작년봄부터 네 차례에 걸쳐 나눈 대화를 묶은 대담집 '고은 깊은 곳'(아시아)이다.

두 사람의 대담집이 처음은 아니다. 5년 전 '두 세기의 달빛'(한길사)이 출간됐다. 차이점이 있다면 '두 세기의 달빛'이 1930~1950년대를 중심으로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면 '고은 깊은 곳'은 고은의 시작부터 지금까지를 두루 다루고 있다.고은은 “내 정체성은 ‘존재와 언어의 통일’을 전제로 성립한다”고 강조한다. “나는 누구냐는 질문은 더 이상 추상적일 수 없다네. 나는 나의 말이고 나의 글이네. 그리고 나의 말과 글을 잃어버리는 그 치매의 소실이 나의 내일일 것이네.”

고은 시인은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자’다. 한국 문인 중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1순위는 단연 고은 시인일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일이 다가오면서 언론과 문단계는 또 다시 고은의 시 세계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그러나 고은은 자신의 60년 시세계를 한 마디로 단정짓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시인생활 60년을 내일모레로 앞두고 있는데 내 시의 여생도 무어라고 정의할 수 없는 것처럼 내 시의 몇십 년 역정을 한 마디로 단정하는 일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네. 누구는 무어라 하고 누구는 무어라 할 것이네. 그것들의 합산으로 하나의 애매몽롱한 공약수는 가정할 수 있을 터이지.”

이번 대담을 통해 고은은 자신의 시의 오랜 주제인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밝히기도 한다. “한 인간의 생애를 한 두마디로 요약한다면 ‘태어나고, 만나고, 죽는 것’이네. (…) 다만 어린 나에게는 할머니의 죽음, 그 뒤에 할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자연적인 죽음 사이에 역사로서의 죽음인 전쟁 시기 학살과 전사라는 인위적인 죽음들의 비극이 엄청났던 것이네. 거기서 죽음이 얼마나 삶을 모독하는가를 죽음이 얼마나 삶 따위를 가소롭게 하는가를 소년인 나는 아무런 정신이나 의식의 단련없이 체험한 것이었네. 어쩌면 내 근원의 허무주의야말로 이런 죽음의 그한 상태에서 발생했는지 모른다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