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인 국감 줄소환, 이럴 거면 '증인실명제' 왜 도입했나

올해 국회 국정감사(12~31일)에서도 기업인을 증인으로 줄소환하는 악습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금까지 상임위원회별로 채택된 기업인 증인 수는 정무위 29명을 비롯해 80명 가까이 된다. 그러나 각 상임위가 추가로 채택할 가능성이 크고, 아직 채택하지 않은 상임위도 적지 않아 그 숫자는 역대 최대를 기록한 지난해(150명) 수준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988년 부활한 국감은 입법부가 행정부와 사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이들 기관이 국감의 주된 대상이 돼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도 기업인을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불러 윽박지르고 호통치는 것이 오랫동안 관행화되다시피 했다. 기업인을 하루 종일 대기하게 하고 의원들이 자기 할 말만 하는 바람에 질의는 고작 몇십 초에 그치기 일쑤였다.올해도 구태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증인 명단에 올려놨다가 지역구 민원 해결을 조건으로 슬쩍 빼주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필요하다면 기업인을 부르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증인 신청 사유를 보면 과연 이런 일로 굳이 기업 최고경영자를 국감장까지 불러내야 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것이 적지 않다. 특정 기업의 야간 근로문제를 다루겠다거나, 직원 과로 관련 개선안 이행 실태를 점검하겠다는 것 등이다. 광고비 지출이 과다하다는 이유까지 있다.

여야는 올해 처음으로 어느 의원이 누구를, 왜 증인으로 부르려는지 공개하는 ‘증인신청실명제’를 도입했다. 마구잡이로 기업인들을 증인으로 부르는 관행을 줄여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 제도를 역이용해 홍보효과를 노린 의원들이 앞다퉈 자신이 신청한 증인 명단을 공개하고 나선 것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증인을 과도하게 채택하는 등 국회가 갑질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으나 먹히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매년 국감 증인을 채택할 때 행정부가 (국감) 대상인지, 기업이 대상인지 혼란스럽다”고 한탄했을까 싶다. 각 당은 올해도 ‘정책 국감’을 표방하고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거리가 멀다. 이럴 거면 국감 증인신청실명제는 무엇하러 도입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