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에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기억과 시간을 다루는 작가"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올해 노벨문학상은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에게 돌아갔다. 삶과 진실이라는 묵직한 주제에 천착하며 품위있는 작품을 내놓고 있는 작가로, 현재 영어로 글을 쓰는 작가들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르포 문학가(2015년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싱어송라이터(지난해 수상자 밥 딜런)에 이어 올해엔 이시구로가 상을 가져가면서 다시 명실상부한 ‘순수문학 작가’에게 상이 돌아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시구로는 누구스웨덴 한림원은 5일(현지시간)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이시구로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영국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2007년 도리스 레싱(1919~2013) 이후 10년 만이다.

이시구로는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5살이 되던 해인 1960년 영국으로 이주했다. 영국 켄트대에서 철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 이스트앵글리아대에서 문예창작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가사키의 피폭과 재건을 그린 《창백한 언덕 풍경》을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1986년 두 번째 소설 《부유하는 세상의 예술가》로 영국의 명망있는 휘브레드 상과 이탈리아 스칸노 상을 받았다. 1989년 출간된 세 번째 소설 《남아 있는 나날》로 맨부커상 수상의 명예를 안으며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 했다. 1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이기도 한 이 작품은 앤서니 홉킨스, 에마 톰슨이 출연하는 동명의 영화(1993년)로도 만들어졌다.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에는 대영제국 훈장을, 1998년 프랑스 정부가 주는 문화예술공로 훈장을 받았다. 국내에 이시구로 책을 7권 출판한 민음사의 박여영 해외문학팀 부장은 “흔히 ‘문학적 작가’라고 생각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고전적 작가”라며 “시류에 흔들리는 작가가 아니라 삶의 아름다움과 진실에 관한 주제에 대해 깊게 써내려간 작가”라고 설명했다.◆“기억과 시간을 다루는 작가”

한림원은 이시구로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위대한 정서적 힘을 가진 소설들을 통해, 우리의 환상 밑 심연을 드러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다니우스 한림원 사무총장은 “영국 여류 작가 제인 오스틴과 독일 작가 프란츠 카프카를 뒤섞은 듯한 소설가가 이시구로”라고 말했다.

일본 혈통이지만 5살 때부터 영국에서 살아온 이시구로의 문학 세계는 전통적인 일본 문학의 특징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림원은 이시구로가 작품에서 집중하고 있는 주제는 “시간과 기억, 그리고 자기기만”이라고 설명했다.특히 그의 대표작 《남아있는 나날》에서 이러한 주제 의식이 두드러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20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귀족을 모시는 집사 스티븐슨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충직한 집사가 되기 위해 헌신하지만 결국 귀족 집안이 몰락한다. 그가 지키려 했던 충직함이라는 가치는 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되묻는 소설이다.

이남호 고려대 교수는 “‘시간과 기억’을 다룬다는 건 역사를 다룬다는 의미”라며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은 방향으로 진실을 왜곡할 때가 많은데 이시구로는 시대적 가치가 바뀌어 가는 상황에서 무엇이 왜곡되고 있는지 성실하게 탐구한다”고 설명했다.

수상자 발표 직후 이시구로는 영국 BBC방송 인터뷰를 통해 “(노벨문학상 수상은) 굉장한 영광”이라며 “내가 위대한 작가들이 걸어온 길을 따른다는 뜻이며 그것은 아주 멋진 찬사”라고 소감을 밝혔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