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땅이니 못 지나간다"…성묘객 막아선 '귀농인 몽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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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인과 주민 간 갈등 깊어충남 천안의 선산에 매년 벌초를 다니는 박용민 씨(31)는 작년 추석부터 무거운 제기를 들고 500m 넘는 거리를 돌아가고 있다. 묘지를 둘러싼 토지 소유자가 바뀌면서 접근 도로를 막아버린 탓이다. 새 주인 한모씨(62)는 은퇴 후 전원생활을 즐기기 위해 터를 잡은 귀농인. 길을 막은 한씨를 상대로 박씨는 소송을 걸었지만 패소하고 말았다.
민사·형사소송 사례도 급증
귀촌 땐 현장 꼼꼼히 확인해야
귀농 인구가 늘면서 명절 성묘객들과의 분쟁이 크게 늘고 있다. 한발씩 양보하는 대신 대법원까지 가서 법률분쟁을 벌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전북 전주에 있는 한서 법률사무소의 홍민호 변호사는 “지역 내 변호사업계에 귀농인들과의 다툼 관련 사건 수임이 급증했다”고 전했다.민법 제219조는 토지 소유자 등이 다른 사람의 토지에 둘러싸여 공공도로로 갈 수 없는 경우 사유지로 통행할 ‘주위토지통행권’을 인정하고 있다. 대구에 있는 법무법인 효현의 김재권 변호사는 “묘지를 둘러싼 주위토지통행권 확인소송의 경우 80% 정도는 법원 조정으로 해결되지만 20%는 민사뿐 아니라 형사소송까지 간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일이 꼬이는 데는 ‘외지인’인 귀농인들과 인근 주민들 간 정서 차이로 인한 감정의 골이 만만치 않아서다. 서울서 살다 아내 윤모씨(61)와 함께 작년 2월 전주로 귀농한 이모씨(63) 사례도 그런 경우다. 추석이 되자 인근 주민들이 ‘묘소 가는 길’이라며 집 근처와 과수원 관통 길을 차로 무단 통행해 이씨가 항의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이용해온 길인데 왜 막느냐”며 거꾸로 따졌다. 결국 이씨는 길을 철문과 돌로 막았고, 민·형사소송으로 이어졌다.
민사소송에선 이씨가 이겼다. 대체도로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육로를 방해할 때 성립되는 일반교통방해죄 혐의의 형사소송에선 졌다. 이씨는 사유화됐다면 도로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그에게 벌금 100만원을 물렸다. 김 변호사는 “시골은 지적도에 길이 잘못 기재되기도 하는 만큼 분쟁을 예방하려면 꼼꼼한 현장 확인은 물론이고 마을 정서도 점검 대상”이라고 조언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