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아우토반' 된 베를린… 유럽 인재 몰려 1300여개사 창업
입력
수정
지면A12
제조업 강국 독일 '스타트업 강국' 으로냉전시대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동서로 가르던 검문초소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오라니엔 거리를 따라 동쪽으로 1.5㎞ 가면 베타하우스(betahaus)란 이름의 건물이 나온다. 동독 시절 한 기업이 문서 저장 창고로 사용하던 6층짜리, 연면적 3500㎡의 이 건물은 현재 베를린은 물론 독일에서 가장 트렌디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유럽 전역에서 몰려든 젊은이들이 설립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으로 가득한 코워킹 스페이스로 자리잡았다.
'창업가의 도시'로 변신한 독일 베를린을 가다
동베를린 곳곳에 창업보육시설
외국인 창업자 비중 43% 달해
스타트업 투자금액 런던 제쳐
독일 1.9%성장 때 베를린 2.7%↑
"인더스트리 4.0 성공 좌우한다"
독일정부도 예산 등 전폭 지원
지난달 25일 찾은 베타하우스에서는 200여 명이 건물 곳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외부인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1층 카페에선 새로운 직원을 뽑기 위한 면접이 곳곳에서 진행 중이었다. 독일어보다는 영어가 훨씬 더 많이 들렸다. 이바 얀코빅 베타하우스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유럽 전역에서 모인 사람들이 함께 일하기 때문에 이곳의 공용어는 영어”라고 설명했다.◆베를린은 ‘스타트업 아우토반’
베를린은 지난 몇 년 사이 유럽 최대 창업도시로 발전했다. 독일의 최고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의 이름을 본떠 ‘스타트업 아우토반’이란 말까지 나온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조사전문기관인 스타트업게놈프로젝트가 올해 4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베를린은 세계 도시별 스타트업 생태계 가운데 7위에 올랐다. 유럽 도시 중에선 영국 런던(3위) 다음으로 순위가 높았다. 서울은 20위 안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베를린에선 지난 4년간 1300개 스타트업이 새로 생겨났다. 하루에 하나꼴이다. 독일 스타트업이 받은 투자금액 가운데 63%가 베를린 스타트업에 집중됐다. 2015년에는 총투자금액 21억5000만유로로 런던(17억7000만유로)을 처음으로 제치기도 했다. 이 같은 창업 열기는 베를린 경제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지난해 독일의 경제성장률은 1.9%였는데 베를린은 2.7%로 독일 내 최고 성장률을 기록했다.
◆예술가의 도시에서 창업가의 도시로
통일 이후에도 별다른 산업 기반이 없던 베를린은 2001년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시장이 취임한 뒤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poor but sexy city)’를 슬로건으로 예술 도시를 표방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젊은 예술가들이 몰려들면서 유럽 최고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창업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젊은이들이 모인 베를린은 자연스럽게 창업 도시로 진화했다. 2009년 문을 연 베타하우스도 프리랜서 예술가들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스타트업 중심 공간으로 바뀌었다. 베타하우스 외에도 팩토리베를린, 더플레이스 등 창업자를 위한 공간이 동베를린 지역에 잇달아 문을 열었다. 얀코빅 COO는 “스타트업 보육공간 상당수가 동베를린에 자리잡고 있다”며 “서베를린 지역보다 땅값이 싸다 보니 창업자 상당수가 동베를린으로 모여들었고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스타트업이 인더스트리 4.0의 핵심”
기술 기반 스타트업 비중이 높은 것도 베를린의 특징이다. 베타하우스에서 만난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기기(IVI)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비쿠(Veecoo)의 창업자 크누트 스퇴머는 “독일이 전통적으로 강한 자동차, 제약, 기계 등과 관련한 하드웨어 스타트업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 소개했다.
제조업 강국인 독일 정부는 산업의 디지털화를 핵심으로 하는 ‘인더스트리 4.0’ 정책의 성공을 위해 스타트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독일 연방 재무부는 지난해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100억유로(약 12조원)의 예산을 추가 편성하기도 했다.주변 국가에서 고학력 인재가 몰려오는 것도 베를린이 창업 도시로 발전한 배경이다. 동유럽과 맞닿은 독일의 지리적 특성 덕에 폴란드 체코 슬로베니아 루마니아 등에서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베를린으로 몰려들고 있다. 베를린 스타트업 창업자의 43%는 독일 외 국적을 갖고 있다. 실리콘밸리에 이어 외국인 창업자 비율이 두 번째로 높은 도시다. 외국인 창업자 대상 비자 발급률도 77%로 높은 편이다.
베를린=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