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이당 김은호 '파교심매도'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이당 김은호(1892~1979)는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의제 허백련, 심향 박승무, 심산 노수현 등과 함께 근대 한국화 6대 작가로 불린다. 이당은 1912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학교인 ‘경성서화미술회’ 2기생으로 입학한 지 21일 만에 화가 최고 영예인 어진화사(御眞畵師)가 됐다. 우리 화단에서 이당을 근대 한국화의 대가로 꼽는 것은 단지 고종 순종의 어진을 모셨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전통 채색화 분야에서도 남다른 신기(神技)를 보여줬다.

이당이 제작한 이 그림은 추운 겨울에 말을 타고 매화를 찾아 나선 선비의 고상한 자태를 묘사한 채색화의 수작이다. 중국 당나라 시인 맹호연이 장안(長安) 동쪽에 있는 파교를 건너 눈 덮인 산에서 매화를 찾아다녔다는 고사를 소재로 삼았다. 조선 남종화의 창시자로 알려진 현재 심사정과 19세기 활동한 소림 조석진이 그린 동명 작품 ‘파교심매도’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말을 탄 선비와 추운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매화, 설산을 세필기법과 부드러운 색채로 잡아냈다. 긴 화면을 따라 배치한 소재들의 구성미도 돋보인다. 화면에 넘치는 가파른 계곡은 하늘을 향해 솟구치며 곡선미와 율동미를 보여준다. 이제 막 파교에 들어선 선비는 기대와 설렘에 길을 재촉하지만 추운 겨울 억지로 따라나선 하인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