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정점에서 아름답게 내려오고파… 마지막 무대 '오네긴' 더 큰 감동 될 것”

“우리 부부는 늘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탁 내려놓자’고 다짐해왔습니다. 관객들이 ‘저 사람 이제 그만둬야 하지 않나’ 생각할 때 내려오고 싶지 않았어요. 행복하게 마무리하기에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했습니다.”

국내 최초의 현역 수석무용수 부부인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황혜민(39)과 엄재용(38)이 은퇴한다. 두 사람은 12일 서울 정동 달개비 컨퍼런스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달 24일과 2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할 드라마 발레 ‘오네긴’을 마지막으로 발레단 수석무용수 직을 내려놓는다”고 말했다.황혜민은 2002년, 엄재용은 2000년 유니버설발레단에 들어왔다. 2012년 8월 화촉을 밝히고 부부가 됐다. 15년 넘게 무대에서 주역 파트너로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이 이제까지 함께 한 공연은 1000회를 넘는다.

황혜민은 “발레는 오롯이 인간의 몸으로만 감동을 전해야 하는 예술이기에 항상 어려운 과제였다”며 “매번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하지만 어떤 날엔 이게 과연 내 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한없이 작아질 때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일단은 좀 쉬고 싶고, 2세 계획도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엄재용은 “아내와 함께 같은 모습으로 내려오고 싶어 발레단에서 은퇴하지만 무용은 계속 할 것”이라며 “2~3년 전부터 하고 있는 일본 활동과 소규모 공연 등을 이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안무 작업과 후배 무용수 교육 등에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무용수는 엄격한 자기 절제가 일상이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식단을 조절하고 사소한 감기도 걸리지 않게 조심한다. 발레리나는 ‘머리카락도 소품’이라는 생각에 헤어스타일을 자유롭게 바꾸지도 못한다. 둘은 당분간 ‘느슨한’ 시간을 가져볼 계획이다.황혜민은 긴 머리카락을 내보이며 “30년간 한 번도 짧게 잘라본 적이 없다”며 “다음달 마지막 공연을 끝낸 다음날 머리를 아주 짧게 자르고 염색할 생각”이라고 했다. 엄재용은 “제주도부터 서울까지 쭉 올라오는 여행을 하면서 각 고장의 맛집을 탐방할 것”이라며 웃었다.

두 사람은 “저 커플은 모든 공연마다 감동을 주는 무용수였다고 기억되고 싶다”며 “마지막 공연 ‘오네긴’은 더욱 완벽하고 감동적인 무대로 만들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