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눈] '헐~' 아니라 '할!'이 필요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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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수시모집 접수가 시작됐다. 학생들의 얼굴이 입시 걱정과 불안으로 수척해 보인다. 고등학교 윤리 교사로서 지식과 함께 도덕적 사고와 실천력을 갖춘 제자를 길러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늘 부끄럽기 그지없다.

에어컨 고장으로 찜통 같던 지난 여름날 오후. ‘인내도 배움’이라며 수업을 하려는 필자에게 학생들이 하는 말, ‘헐~’. 더위와 피곤에 지친 학생들에게는 필자의 말이 무정하고 어이없게 들렸나 보다. 대단한 것을 발견했을 때 ‘헐~’이라고 하지만 참 못마땅하다고 느낄 때도, 남의 실수를 비난할 때도 ‘헐~’ 혹은 ‘헐~대박!’이라고 한다. 이런 청소년의 말투 속에서 남의 눈치와 비난이 무서워 몰개성화하고 다양성과 창의성이 다치지나 않을까 무섭다. 청소년기는 남의 비난을 걱정하고 남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고, 자신만의 주체성을 찾아 나아가는 것이 더욱 절실한 때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중국 선종의 덕산 스님은 제자들이 청하는 가르침에 몽둥이찜질을 퍼부었고, 임제 스님은 제자들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고함과 욕설(할·喝)을 질렀다. 불교 선종은 경전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참선과 노력을 통해 진리를 깨칠 수 있다고 보는 종파다. 몽둥이로 맞고 욕을 들으면 누가 아픈가? 바로 내가 아프고 상처받는다. 결국 ‘모든 깨달음의 주체는 본인 스스로’라는 진리와 ‘그 마음속 깊은 곳을 똑바로 보고 스스로 깨우치라’는 가르침을 전했던 것이다.

‘알파고 시대’를 살아갈 학생들을 지켜보는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입시 경쟁 속에서 수동적으로 익숙해져 버린 오늘의 나 자신을 똑바로 보고, 삶의 주체성을 깨닫기 위해 지금 청천벽력과 같은 고함 ‘할’을 질러야 할 때다.

전병범 < 충남 아산고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