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금융을 산업으로 육성할 수 없나

금융의 이윤추구를 백안시 말고
기본 규제 외에는 자율에 맡겨야
역량있는 CEO 임기보장도 중요

황건호 < 서강대 교수·전 금융투자협회장 >
문재인 정부의 ‘금융홀대론’이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가뜩이나 우리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게 낙후된 금융산업 현실을 감안할 때 이런 얘기가 기우에 지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당면한 몇 가지 문제점을 짚어 보자.

우선 금융을 ‘산업’으로 인식하고 육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GNI)은 2만7561달러였다. 10여 년째 2만달러 덫에 갇혀 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서비스업 중 특히 금융업이 독자적 산업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그동안 금융업은 제조업을 지원하고 서민을 돕는 역할이 부각됐다. 그 결과 공공성이 강조된 측면이 있다. 이제는 공공성 못지않게 기업성이 강조돼야 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고 독자적 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금융업의 이윤 추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풍토가 개선되지 않는 한 한국 금융은 실물경제 지원은커녕 생존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둘째, 금융 규제를 돌아봐야 한다. 우리 금융 규제는 일일이 간섭하는 코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세세한 규제로는 모든 금융회사가 라이선스에 의존한, 차별화 없는 영업행태를 보일 수밖에 없다. 금융을 물가에서 노는 아이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립심을 심어줘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한 이유다.

시스템적 위험을 야기할 수 있는 거시건전성 규제나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기본적 규제는 강화하고 나머지는 큰 테두리를 쳐 금융회사 자율에 맡기는 게 어떨까 한다. 대신 이 테두리를 벗어나는 위반에 대해서는 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정부 당국은 이제 코치 역할에서 심판 역할로 전환해야 한다.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금융의 본질적 수익원인 위험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도록 경쟁하게 해야 한다.

셋째, 단기 성과주의 문화의 개선이다. 최고경영자(CEO) 임기가 짧은 데 따른 문제가 제법 많다. 한 해 한 해 성과에 따라 수명을 연장하게 된다면 누구든 단기적으로 수익을 올리는 데 치중할 수밖에 없다. 장기 성장 전략에 따른 경영을 할 수 없고, 금융의 핵심인 우수 인력 양성도 소홀히 하게 된다. 이런 문제는 결국 우리 금융 발전에 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다. 역량 있는 CEO를 발굴하고 그 역량을 발휘하도록 임기를 충분히 보장할 필요가 있다.넷째, 금융회사 지배구조 문제다. 공공성이 강조되면서 소위 힘 있는 기관들이 인사에 개입하며 CEO 임면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문제다. 이 이면에는 ‘금융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금융은 전문 분야다. 금융은 위험을 관리하면서 수익을 낸다. 그것도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금융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 맡아도 사실 만만치 않다. 하물며 금융 경험이 부족한 사람으로서는 더 많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또 지배구조와 관련해 노조, 내부 임직원 등 내부자들의 방어적이고 폐쇄적인 인사 조직 문화도 문제다. 보신적인 순혈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다섯째, 금융 리더의 전문성 문제다. 무엇보다 글로벌 경험과 시각이 부족해 제한된 국내 시장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문제다. 이는 앞으로 해외 진출을 통한 국제경쟁력 강화에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 금융 리더들의 전문성에 기반한 소명의식이 한층 더 요구된다.

실물상품은 그 물건을 보면 믿고 거래할 수 있지만 금융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용이 바탕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금융이 규모, 인력, 네트워크 등의 능력을 키워 브랜드 파워를 가져야 한다. 이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미래를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차분히 나아가야 한다. 정부의 규제완화와 지원 아래 금융회사의 치열한 자기 혁신이 합쳐져야 금융산업이 큰 진전을 이룰 수 있다.

황건호 < 서강대 교수·전 금융투자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