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 변주…'퓨전 국악공연' 쏟아진다

저승길 판타지 그린 '꼭두'
불멸의 대금명인 다룬 '적로'
박칼린 국악쇼 '썬앤문'
'동동' '판' 등 줄줄이 공연
전통공연예술 활력 기대
오는 22일까지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오르는 음악극 ‘꼭두’. /국립국악원 제공
남매가 손을 꼭 잡고 시골의 전통시장을 헤매는 영상이 대형 스크린에 흐른다. 이들은 골동품 더미를 헤집다가 우연히 저승으로 연결된 통로로 빨려 들어간다. 공연장 안이 암전됐다가 밝아지자 무대에 남매가 정신을 잃고 누워 있다. 남매는 저승에서 ‘꼭두’ 4명을 만나 신비로운 모험을 한다. 꼭두는 선조들이 상여에 매달던 나무인형으로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여겨졌다. 무대 공연 때 국립국악원 정악단과 민속악단이 배경음악을 연주한다.

지난 4일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막을 올린 음악극 ‘꼭두’는 영상과 무대를 넘나들며 진행된다. 오는 22일까지 이어지는 이 공연은 중국 배우 탕웨이 남편으로 잘 알려진 김태용 영화감독이 연출을 맡아 개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17일까지 객석점유율 87.5%를 기록하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전통문화 기반 ‘퓨전 공연’ 잇달아

전통음악과 춤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퓨전 공연이 잇달아 무대에 오르고 있다. 영상과 무대를 오가며 극이 흐르는 ‘꼭두’를 비롯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국악과 당시 유행한 대중음악을 함께 선보이는 ‘적로’, 홀로그램과 조명 쇼로 화려하게 연출한 국악 넌버벌 퍼포먼스 ‘썬앤문’, 13가지 전통 탈춤의 특징을 조합해 창작 안무를 선보이는 ‘동동’, 블랙코미디 국악 뮤지컬 ‘판’ 등이다. 모두 초연작으로 전형적인 전통 공연과 달리 다른 장르와 협업하거나 대중음악을 함께 연주하는 등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게 특징이다.다음달 3~24일 무대에 오르는 ‘적로’는 기구한 삶을 산 일제강점기 대금 명인 박종기(1879~1941)와 김계선(1891~1943)의 음악세계와 삶을 재조명한다. 두 명인이 절륜의 재주를 타고난 기생 산월을 만나며 겪는 일을 그렸다. 극작가 배삼식이 쓴 극본에 작곡가 최우정이 음악을 입혔다. 현대무용가로 유명한 정영두가 연출을 맡았다. 대금 등 전통음악은 물론 20세기 초 유행한 스윙재즈 등 대중음악까지 풍성하게 선보인다.

다음달 10일부터 오픈런(기간을 정해놓지 않는 것)으로 공연되는 ‘썬앤문’은 화려한 볼거리를 곁들인 대중 공연을 지향한다.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이 연출한다. 국악기 연주자 11명이 국악뿐만 아니라 록, 팝, 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려준다.

◆전통공연 대중화에 기여할까정동극장은 두 작품을 준비했다. 다음달 9~26일 공연하는 ‘동동’은 현종(고려 8대 왕)이 불교행사 팔관회가 열릴 때 궁궐 밖으로 나들이를 나갔다가 겪는 모험을 그린다. 이 작품에는 양반탈 각시탈 등 전통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제작한 14가지 창작 탈이 등장한다. 국악적 요소를 갖춘 넘버(뮤지컬 삽입곡)와 탈춤을 바탕으로 한 창작 안무를 선보인다.

12월9~31일 무대에 오르는 ‘판’은 조선 후기 이야기꾼 전기수에 대한 얘기다. 양반 호태가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 낮에는 양반으로, 밤에는 전기수로 이중생활하는 스토리를 그렸다.

공연계는 이들 작품의 다양한 ‘실험’이 전통 공연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해숙 국립국악원장은 “전통 공연도 그 시대 관객의 취향을 반영해 변하게 된다”며 “전통의 전승과 관객 만족이라는 양 날개를 모두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