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위기시대…경제학자들이 외쳤다 "시장경제 제약해선 혁신도 번영도 없다"

'오래된 새로운 비전·전략' 출간
최광 성균관대 석좌교수 등
30여명 집필진으로 참여

"작은 정부가 최선의 답"
법인세율 낮춰 외자 유치한
싱가포르 벤치마킹해야
행정부 밖 '규제심판소' 설립
'제왕적 대통령' 힘 분산을
30명의 자유주의 학자와 지식인이 18일 서울 세종대로 프레스센터에서 보수의 비전과 전략을 집대성한 책 《오래된 새로운 비전·전략》 출판 기념회를 열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유정호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김승욱 중앙대 교수, 조영기 고려대 교수, 문근찬 숭실대 교수, 김주성 전 교원대 총장,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 오정근 건국대 교수, 김이석 아시아투데이 논설실장, 김정호 연세대 교수,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 소장, 민경국 강원대 명예교수, 박동운 단국대 명예교수, 최광 성균관대 석좌교수,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강위석 전 월간 에머지 대표, 이주천 원광대 교수, 신도철 숙명여대 교수. 강은구 기자egkang@hankyung.com
‘보수의 최대 위기’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정치권을 포함한 한국 자유주의 진영이 중심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자유주의 경제학자 30여 명이 한데 뭉쳐 1200쪽에 달하는 역작을 펴내 눈길을 끈다. 최광 성균관대 석좌교수(전 보건복지부 장관)가 주도해 보수 우파의 비전과 전략을 논문 43편으로 집대성한 《오래된 새로운 비전·전략-대한민국 바로세우기》(기파랑)이다. 《~새로운 비전》은 자유주의 우파의 가치와 비전을 다뤘고, 《~새로운 전략》은 이를 개별 정책으로 구체화했다. 현 정부 정책의 골간을 이루는 정책제안서가 진보 학자들 중심으로 나오고 그들 중 일부가 정부 요직에 기용된 흐름에 맞서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란 평가다. 18일 서울 세종대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이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다시 오른쪽으로 돌려놔야 나라 경제가 살아난다”고 입을 모았다.

“번영은 자유시장경제 힘으로만 가능”
이날 행사에는 국내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100여 명의 학계 및 산업계 인사가 총집결했다. 이들은 ‘보수의 뼈아픈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경제주체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진정한 자유시장경제체제가 국가를 번영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데 뜻을 모았다. 이 주장이야말로 이번 저작의 핵심 내용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인사말에서 “소득격차 문제와 대·중소기업 관계, 노사 문제 등 많은 갈등으로 ‘한국 사회는 불공정한 사회’라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이 같은 문제는 고전적 자유주의에 기반한 자유시장경제체제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국민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 우선인 정부가 개별 경제주체의 자유와 재산권을 제약해서는 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발제자로 나선 유정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역시 ‘경제적 자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유 교수는 “19세기 영국 정부가 경제적 약자 보호를 위해 기계 사용을 금지했다면 산업혁명은 물론 인류 문명의 획기적 향상은 없었을 것”이라며 “내 것이 어느 개인, 힘있는 집단, 정부에 의해서도 침해받지 않는다는 확신이 혁신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경제 질서의 답이 완벽하게 만족스럽진 않지만 현실적으로 이보다 더 나은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작은 정부가 답”

이날 모인 학자들은 “일자리, 소비, 설비투자, 건설 실적 등 내수 전반이 악화되고 있는 지금 ‘작은 정부’가 최선의 경제성장 전략”이라고 의견을 같이했다. 규제를 최소화하고 경제주체들이 자유롭게 이익 활동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면 파이는 자연히 커진다는 주장이다.책에 담긴 한국 경제의 불씨를 살릴 다양한 제언 역시 ‘작은 정부’라는 기치 아래 나온 전략들이다. 박동운 단국대 명예교수는 “법인세율을 17%로 낮추고 각종 규제를 풀어 엄청난 액수의 해외직접투자를 유치한 싱가포르의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2006년 이후 자본 순유출이 175조원에 이르는 한국은 산재한 규제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정호 연세대 교수 역시 “여러 산업의 진입장벽을 풀어 새로운 기업의 진입을 촉진해야 한다”며 “차량 공유업체인 우버를 한국에서 사업할 수 없게 하고, 원격의료를 허용하지 않는 등 최근의 작태는 해당 산업 발전을 막는 구태”라고 말했다.

규제 때문에 발생하는 행정부와 민간 부문 사이의 ‘힘의 불균형’ 문제도 지적됐다. 유 교수는 “규제를 등에 업고 정부가 시장경제에 거침없이 간섭한다”며 “규제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심의할 수 있는 규제심판소를 행정부 밖에 설립하는 것이 ‘제왕적 대통령’의 힘을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주의 학자들의 모임은 책 두 권의 출판으로 끝나지 않는다. 유 교수와 민경국 강원대 명예교수 등 10여 명의 집필진은 해방 이후 경제정책의 득실을 분석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