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스토리]물감으로 덮는 업무 스트레스...예체능 취미시장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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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와 무관한 취미로 스트레스 푸는 직장인지난 14일 토요일 오전 11시 서울 서교동 한 빌라로 사람들이 모였다. 열댓 명이 각자 원하는 붓을 골라잡았다. 각자 붓에 물을 적셔 수채화를 그리거나, 기름을 적셔 유화를 그렸다. 흐르는 최신가요를 흥얼거리며 저마다 작품 세계를 펼쳤다.
성장하고 있는 성인 취미 미술 시장
취미 활동을 방해하는 1순위는 '업무'
수업에 참가한 기자에게 화실 강사가 물었다. “오늘 뭐 그리고 싶으세요?” 떠오르는 그림이 없다고 하자 참고용 샘플 그림들을 보여줬다. 알아서 그리되 필요하면 강사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그림에 대한 깊은 조예나 화려한 손놀림은 필요 없었다. 어차피 점수를 매기거나, 팔기 위한 그림이 아니었다. 오롯이 자기만족이었다. 이날 모인 이들은 모두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그리면서 푸는 업무 스트레스
전공자들의 전유물이 아닌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 날 처음 화실에 나온 직장인 이주희(25) 씨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편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 다녔던 미술학원과 달리 틀에 박힌 방식이나 지루한 기초 교육이 없는 점에 만족했다. 직장인 어진영(36) 씨는 “주말에 그림에 집중하는 시간이 즐겁다”며 그림 하나를 완성했을 때 성취감을 장점으로 꼽았다.4년째 화실을 운영하고 있는 조혜수 대표는 “수강생 2명으로 시작한 화실이 지금은 분점까지 내 수강생 400명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며 “취미로 예술 분야를 선택하는 성인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 전했다. 이 같은 현상은 교육부가 전국 학원 및 교습소 집계한 결과에서도 찾을 수 있다. 작년 말 기준 성인을 대상으로 외국어를 가르치는 국제화(559곳)학원이나, 대학 편입, 행정, 통계 등을 위한 인문사회(606곳)학원보다 미술, 음악, 무용 등을 가르치는 기예(1479곳)학원이 많았다. 기예는 2010년 808곳에 비해 약 83% 급증했다.수강생들에게 취미로 미술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여자 친구와 함께 온 권혁준(33) 씨는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취미를 가지러 왔다. 미술을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경우도 있었다. 직장인 정주혜(29) 씨는 ‘물감을 섞는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했다. 다른 수강생은 “원하는 색을 칠할 수 있어 재밌다”고 했다. 최근 몇 년 새 유행하고 있는 컬러링북처럼 그림을 통해 ‘휴식’을 얻는 이들이었다.
어린 시절 그림에 대한 향수로 화실을 찾는 이도 있다. 직장인 허은솔(29) 씨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지만 직업으로 삼진 못했다”며 주말에 시간을 내 그림에 열정을 쏟고 있었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그림을 그리러 왔지만, 모두 생업에 종사하며 시간을 내 그림을 그리러 온 사람들이었다.퇴근을 해야 그림도 그릴 수 있죠 하지만 모두가 시간을 내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직장인 이모씨(27)는 지난해 미술학원을 등록했다 3개월만에 그만뒀다. 잦은 야근으로 수업에 꾸준히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회사 일에 치이다보면 취미보다 휴식이 간절해진다"고 말했다.
작년 말 한국교육개발원이 발간한 ‘2016 한국 성인의 평생학습실태’에서 학습을 중도 포기한 가장 많은 이유는 '직장업무로 인해서(32.6%)'였다. 최근 몇 년새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만, 여전히 취미 활동을 방해하는 요인 1순위는 업무임을 알 수 있다.대한민국 성인이 취미 활동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돈보다 시간이 없어서였다. 평생학습에 참여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직장업무로 인해서(54.0%)’가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가족부양에 따른 시간부족(19.5%)’, ‘가까운 거리에 배울 곳이 없어(17.1%)’ 등 순이었다. 금전적 부담을 이유로 든 '학습비가 너무 비싸서'는 12.5%로 나타났다. #스몰스토리 ? 소담(小談), 작은 이야기입니다. 작아서 주목받지 못하거나 작아서 고통 받는 우리 일상을 담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가치의 시각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뉴스래빗 스토리랩의 일환입니다 !.!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rot011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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