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제정책에 시장이 안 보인다"는 무역협회 회장의 고언

김인호 한국무역협회 회장이 그제 임기를 4개월여 앞두고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에서 한 번도 ‘시장’이라는 단어가 나온 적이 없다”고 한 말이 여운을 남긴다. 그는 “시장을 활성화하지 않고 경제를 활성화한 국가가 지구상에 단 하나라도 있느냐. 기업 경쟁력에 무관심한 국가가 경제를 살릴 수 있느냐”고도 했다.

김 회장이 아니더라도 시장경제 원칙이 뒷전으로 밀리는 데 대해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명분이나 취지가 좋아도 시장원리와 맞지 않으면 성과를 낼 수 없고 부작용만 큰데도 그런 정책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범위를 넘어서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고용경직성만 더 키우게 될 노동개혁 양대 지침 폐기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통신료와 금리 등의 시장가격에 대한 개입과 대기업·고소득자를 겨냥한 표적 증세 역시 시장경제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그럼에도 정부 정책 방향에서는 별다른 변화를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일본 프랑스 할 것 없이 세계가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통해 기업활력 제고에 힘을 쏟는 것과는 다르다. 이러다 한국만 경쟁력에서 뒤처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와중에 기업가 정신도 갈수록 위축되고 있지만, 기업 사기를 높일 규제개혁 속도는 기대만큼 빨라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혁신성장을 위해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선(先)허용-후(後)제재’의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체계는 법제화까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신산업 분야에서 기업들이 마음껏 뛰어놀게 할 ‘규제 샌드박스’ 제도도 마찬가지다.

김 회장은 지난 6월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에 “청와대 일자리 상황판 옆에 규제개혁 상황판도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공공부문이 아니라 시장경제를 이끄는 민간부문을 활기차게 움직이도록 해야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조언이었다. 기업과 시장이 활기를 띠도록 해야 성장과 고용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