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사도세자 비극 딛고 성군의 길 걸은 정조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할아버지! 할아버지! 제발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더위가 한창인 1762년 여름. 영조의 명령으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허리와 다리도 못 편 구부정한 자세로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고통과 굶주림 속에 죽어가자 세손인 이산이 애걸했다.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된 이산은 1752년 10월28일 사도세자 이선과 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유달리 영특했고 책 읽기를 좋아했다. 아버지 사도세자는 이런 아들을 위해 직접 글씨를 써서 책을 만들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11세 때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겪고 한평생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살았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이복형 효장세자의 양자가 돼 왕위 계승권을 유지할 수 있었고, 1776년 스물다섯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정조는 즉위식 날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고 말해 신하들을 공포에 떨게 했지만, 피바람을 동반한 보복은 없었다.

정조는 세종과 더불어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꼽힌다. 탕평책을 내세워 정적인 노론도 포용했다. 왕실 도서관이자 학문연구기관인 규장각을 세워 문화정치를 펼쳤다. 정약용, 박제가, 유득공 등 실학자들이 규장각에서 배출됐다.정조는 1800년 종기를 앓다 48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정조가 더 오래 살았다면 조선 후기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