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나비넥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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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희 < 서울 서초구청장 gracecho@seocho.go.kr >나비넥타이를 매는 사람은 흔치 않다.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서 꼬마 제제는 “난 크면 시인이 돼서 나비넥타이를 맬 거야”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어린 눈에도 나비넥타이는 시인이나 예술가 등 좀 특별한 사람이 매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 하지만 올가을 서울 서초구에선 동장(洞長)들이 일제히 나비넥타이를 맸다. 그것도 빨간색으로.
우면산에 초콜릿 빛 어둠이 드리운 지난 9월 예술의전당 야외무대. 서초구 동장들이 동네 골목을 누비던 간편복 대신 말쑥한 정장에 나비넥타이를 하고 모였다. 여성 동장은 하얀 블라우스를 나비처럼 화사하게 차려입었다. 구청장인 나도 이들 틈에 껴 쏟아지는 무대 조명 앞에 섰다.지휘봉을 잡은 예술의전당 사장이 사인을 보내자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시작했다. 30여 명의 전·현직 동장이 ‘나의 살던 고향은~’ 하고 소년·소녀처럼 노래했다. 중간에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깜찍한 율동을 곁들이자 계단까지 빽빽이 들어선 관객이 큰 박수로 화답했다. 전국 최초로 선보인 동장합창단의 감격스러운 데뷔 무대였다.
공연을 마친 동장들은 흥분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가곡의 밤’에서 정상급 성악가와 한무대에 선 게 꿈만 같다고 했다. 구청장과 동장이 무대에서 합창한 것은 30여 년 공직 생활 중 처음이라고도 했다. 아니, 나비넥타이를 맨 것 자체가 난생처음이라며 웃었다. 흐뭇한 미소로 돌아보게 되는 올해 ‘서리풀 페스티벌’의 한 장면이다.
옷이 날개라지만 나비넥타이야말로 날개다. 보는 사람의 마음마저 경쾌해진다. 이를 ‘나비넥타이 효과’라 부를 수 있을 듯하다. 나비넥타이 효과 덕에 올 서리풀 페스티벌은 신바람으로 넘쳐났다. 서리풀은 서초(瑞草)의 우리말이다. 서리풀 페스티벌은 올해 골목축제로 치러졌다. 골목에서 즐기고 골목 경제도 살리자는 뜻인데 고맙게도 동장들이 앞장서서 나비넥타이를 매고 축제 분위기를 띄워줬다.노래는 꼭 목소리로만 하는 게 아니다. 동장들이 일제히 나비넥타이를 맨 건 그 자체로 멋진 합창이었다. 합창은 참 신비롭다.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노래하는데도 하나의 화음을 이룬다. 행정도 합창과 같다. 서초구 18개 동이 각각 일하는데도 전체 구정은 조화로운 하모니를 이룬다. 나비넥타이를 맨 동장합창단은 그 행정에 여유와 감동까지 더해준다.
나비넥타이는 특별한 사람만 매는 게 아니다. 나비넥타이를 매면 누구나 특별해진다. 동장합창단을 보며 깨달은 나비넥타이 효과다. 긴가민가한 분은 용기를 내 한번 매어보시라. 나풀나풀 마음에 날개가 돋아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조은희 < 서울 서초구청장 gracecho@seocho.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