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세계화 후퇴의 끝은 '우울한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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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종말과학기술이 발전하는 양상과 속도만 놓고 보면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처럼 여겨진다. 정보기술(IT), 운송·교통 수단 등의 발달로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국경의 의미는 희미해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지구라는 거대 시장에서 다양한 과학기술 시스템과 기기를 통해 보다 편리하고 저렴하게 물건과 서비스를 매매하고, 자본과 노동을 거래하며 살아간다.
스티븐 킹 지음 / 곽동훈 옮김 / 비즈니스맵 / 312쪽 / 1만5000원
하지만 현실 세계의 정치적 분위기는 꽤 다르다. 오늘날 세계화의 핵심 동력인 자본과 인간, 기술의 이동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더 이상의 통합을 바라지 않고, 세계화가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말도 믿지 않는다. 서구 세계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본격적으로 표출된 세계화에 대한 불만과 비판은 지난해 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하고,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영국 경제학자 스티븐 킹은 “과학기술뿐 아니라 정치를 형성하고 경제를 구성하며 각 지역과 세계의 금융시스템을 만드는 사상 및 제도의 발전과 쇠퇴도 세계화를 결정짓는 요인”이라며 “기존 사상이 약화하고 제도적 인프라가 붕괴되면 어떤 새로운 과학기술이 무더기로 나타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HSBC은행 수석 경제자문역과 영국 하원 재무위원회 특별자문을 맡은 킹은 신간 세계화의 종말(원제:Grave New World)에서 세계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논한다. 미국이 주도한 서구 자본주의 자유시장체제의 세계화가 20세기 중반 이후 번성하고 확장한 과정과 21세기 들어 위기를 맞은 요인을 정교하고 명쾌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중국 등 신흥강국의 반발, 서구 세계 내 세계화에 반대하는 정치운동, 미국 경제의 상대적 하락 등이 맞물려 서구 세계의 세계화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결론짓는다. 그는 금융위기 이전 서구의 많은 경제학자와 정책 결정자들이 너무 무사안일했다고 지적한다. 세계의 경제적 파이는 커졌지만 분배에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세계 경제 통합과 개별 국가의 주권 간에 생기는 갈등을 다루는 데 소홀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의 세계화는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몽테스키외가 사회계약의 기초를 허무는 원인으로 지적한 ‘불평등의 정조(情操)’를 되살리고 있다고 말한다. 생활수준의 불평등이 실제로 악화되지 않은 나라에서조차 “세계화는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저자는 “성공적인 세계화는 단순히 시장이 주도하는 과정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서로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정하는 데 기반이 되는 사상과 제도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세계화 지지론자인 저자는 이 점에서 비관적이다. 20세기에는 미국이 이 과정을 뒷받침했다. 저자가 보기에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후원자 노릇을 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누가 21세기 마셜플랜을 가동하고 다양한 경제체제를 가진 나라들이 교역하는 세계 경제 무대를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의 21세기 버전을 만들 수 있겠는가? 저자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다만 세계화를 되살리기 위해 정책 결정자들이 최소한 분열정책을 추구하는 이들의 모순을 지적하는 노력은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고립과 보호주의를 선호하는 이가 있다면 그런 정책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적이 몇 번이나 있는지 역사를 돌아보라”며 “그런 견해가 승리한다면 미래는 결국 우울한 신세계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