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와규 스테이크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일본인이 소고기를 먹기 시작한 것은 불과 150여 년 전이다. 그 전까지는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을 금했다. 1860년대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야 서양 식습관 장려와 함께 소고기를 허용했다. 이 과정에서 외국 소를 들여와 혼혈번식 등 품종개량을 꾸준히 했다. 지금은 일본 소고기를 최고급 브랜드로 끌어올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일본 소고기의 대명사인 와규(和牛)는 일본 고유의 소 품종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나라 한우(韓牛)가 노란 황우(黃牛)인 데 비해 와규는 검은 흑우(黑牛)가 대부분이다. 그중에서도 고베 지역에서 나는 고베규를 최고로 친다. 1983년 고베규유통추진협의회 설립 후 과학적인 품질관리로 상품성을 높였다고 한다.이 소들은 볏짚과 건초, 콩·보리·밀기울로 만든 특별 사료를 먹고 자란다. 미국이나 유럽의 육우와 달리 풀을 뜯지는 않는다. 목축농가마다 소의 식욕을 돋우기 위해 음악을 틀어줄 정도로 정성껏 키운다. 이렇게 시간과 품이 많이 들고 대량생산이 어려운 탓에 값은 매우 비싸다. 최상급 고기는 100g에 10만원을 웃돈다.

1990년대 이후 미국과 호주에서 와규와 앵거스종 교배에 성공한 뒤로는 서양에도 고베규가 등장했다. 그러나 일본은 자국에서 자란 소만 인정하고 있다. 와규 맛의 비결은 천연 마블링이다. 살코기 사이에 퍼진 지방이 고온에서 녹으면서 놀랄 정도로 부드러운 맛을 낸다. 불포화지방산 비율이 높고 오메가 3·6 성분이 일반 소고기보다 많아 건강에 이롭다.

대표적인 요리법은 ‘야키니쿠(肉·구이)’다. 작은 불판에 얇게 저민 소고기를 한 점씩 구운 뒤 소금에 찍어 구운 마늘과 함께 먹는다. 소고기를 날달걀과 함께 지져 먹거나 전골 냄비에 익혀 먹는 ‘스키야키(鋤·졸임)’, 끓는 육수에 살짝 담가 익혀 먹는 ‘샤부샤부’도 있다. 요즘은 철판구이인 ‘데판야키’가 가장 인기다.고베에서 자란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와규 스테이크 마니아로 유명하다. 그는 “질 좋은 고기를 육즙이 흐르지 않도록 바깥쪽만 익힌 뒤 소금과 후추를 살짝 뿌려 먹는 것을 좋아한다”며 “귀한 손님이 오면 이런 스테이크 맛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했다.

아베 일본 총리가 어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도쿄시내 철판구이집에서 와규 스테이크를 대접했다.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트럼프를 위해 공식만찬과 별도로 마련한 행사다. 기름지고 거대한 미국 스테이크와 달리 입에서 살살 녹는 와규 스테이크로 트럼프의 마음을 녹이려는 ‘오모테나시(お持て成し·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문화) 외교’의 현장이다.

좋은 맛은 혀뿐만 아니라 뇌에서도 오래 기억된다고 한다. 그나저나 트럼프가 한국에 도착하면 우린 뭘로 그의 마음을 녹이나.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