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김한 JB금융 회장 "미래 금융산업 키우려면 핀테크·디지털 분야 규제 풀어줘야"

광주은행장직 내려 놓고 지주사 전념 선언한 김한 JB금융 회장

미래 기술 핵심은 빅데이터…규제 탓에 활성화 어려워

은행이 돈 못 벌면 대출금리 높여 소비자 피해
기업과 오랜 관계 유지하며 상생하는 게 서로에 도움

JB 역할은 자금 공급 늘려 지역경제 활성화하는 것
전북과 광주는 달라…전북·광주은행 통합은 절대 안해

만난 사람=박준동 금융부장
김한 JB금융 회장은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JB금융 서울 본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향후 금융산업의 키워드는 핀테크와 4차 산업혁명인데 일부 가능한 것만 허용하는 포지티브 시스템 때문에 획기적인 아이템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JB금융그룹의 서울 여의도 본사 2층에는 카페를 연상케 하는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회의 공간 ‘팩토리 격(格)’이 있다. 보수적인 분위기의 은행 회의 장소로는 여겨지지 않을 만큼 이색적이다. ‘창의적인 공간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는 김한 JB금융 회장(63)의 지시로 꾸려졌다. 김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등 다양한 외국기업 사무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박준동 금융부장
김 회장은 지난 9월 ‘파격 선언’을 했다. 3년간 맡아온 광주은행장직을 내려놓고 JB금융 회장직에만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광주은행 인수 당시 “지금은 경영 안정화 문제로 (내가) 행장을 맡지만 광주은행이 안정된다면 언제라도 그만두겠다”고 말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 김 회장은 더 하는 게 좋지 않느냐는 지인들의 얘기에 손사래를 쳤다.“약속을 어길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하나의 이유를 더 말했다. “바쁜 행장까지 맡아서 디지털 금융이란 새 영역을 언제 개척하겠어요?” 김 회장은 7년여 전 자산 규모 10조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전북은행을 맡아 광주은행 인수 등을 통해 50조원 규모의 JB금융그룹으로 키워냈다.

금융계는 그간의 성과,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신의,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갖춘 김 회장을 ‘리더’로 여긴다. 지난달 31일 김 회장에게서 JB금융과 한국 금융산업에 대해 들어봤다.

▶JB금융의 영업기반인 전라남북도와 광주 경제는 어떻습니까.“전반적으로 정체돼 있습니다. 특히 전북이 그렇죠. 주요 기업인 현대중공업과 한국GM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지역 자체의 규모도 작죠. 전남도 비슷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고령화입니다. 노인층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성장성이 부족합니다. JB금융의 역할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더 많은 자금이 이 지역에 흘러들도록 하는 것입니다.”

▶JB금융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다행히도 견실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JB금융은 올해 3분기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8.5% 증가한 누적 순이익 2417억원을 올렸다.) 지역기업과 ‘윈윈’하며 서로 끌어주고 끌어올린 게 가장 컸고요. 호남 이외 지역의 비중을 높인 것도 도움이 됐습니다. 전북은행은 수도권에 17개, 대전에 9개의 점포가 있습니다. 광주은행은 서울에만 31개가 있죠. JB금융 이익의 30%가 ‘지역 밖 영업’에서 나오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앞으로 호남 외 지역의 비중을 더 끌어올릴 생각입니다. 집중 타깃은 수도권과 대전·충청 지역이죠. 영남으로는 갈 생각이 없습니다. 이미 그곳에 탄탄한 지역 은행이 있는데 굳이 우리까지 들어갈 필요가 없죠.”▶전북은행과 광주은행을 통합할 생각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통합하는 순간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두 은행의 고객 기반은 완전히 다릅니다. 과거 전북은행이 광주로 갔다가, 반대로 광주은행이 전북에 왔다가 영업이 잘 안돼 철수한 사례가 있습니다. 흔히 전라도라고 하면 다 같은 전라도라고 생각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다릅니다. 두 은행이 합병하고 이름을 바꿔버리면 이도 저도 안 될 겁니다.”

▶그렇다면 두 은행 간의 시너지는 어떻게 냅니까.“통합하지 않고도 시너지를 충분히 낼 수 있습니다. 전산시스템 통합이 대표적이죠. 전산시스템을 통합하면 효율성이 대단히 높아집니다. 이미 사실상 통합을 완료했습니다. 광주은행 고객이 전북은행에 방문해도 혹은 그 반대의 상황에서도 아무런 지장 없이 금융업무를 볼 수 있을 정도죠. 공동으로 상품을 개발해 비용을 절감하는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JB금융이 다른 금융그룹에 비해 차별화된 영업 방식은 무엇입니까.

“국내에는 6개의 금융그룹이 있습니다. 신한·국민·하나금융그룹이 대기업과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주로 영업하면, BNK·DGB·JB금융은 그다음 고객층을 상대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JB금융은 그런 측면에서 오히려 선제적으로 시장을 선점하려 하고 있습니다. 중금리대출 상품을 대폭 강화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1금융권에서는 대출을 받을 수 없고, 그렇다고 2금융권으로 가기엔 모호한 고객을 위한 것이죠. 중소기업 대출도 전체 대출의 60%씩 꼬박꼬박 비율을 맞추고 있습니다. 지역 경제를 위한 것이기도 하죠.”

▶증권·보험회사 인수 계획은 없습니까.

“좋은 매물이 있다면 들여다보겠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습니다. 금융지주사기 때문에 모든 금융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다른 지주에 비해 작기 때문에 더욱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생각만 하죠. 가장 중요한 건 내실입니다. 조만간 중국에 광주은행 지점을 낼 예정인데, 이른 시일 내에 수익을 낼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장기적으로 안전하게 가야죠.”

▶요즘 국내 은행이 지나치게 이익을 많이 낸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은행은 어느 정도 이익을 내야 합니다. 그래야 은행이 이익금을 다시 시장에 투입해 경기 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은행이 돈을 못 벌면 대출금리를 높여 소비자도 피해를 입게 되죠. 은행이 수익을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업과 손잡고 상생하는 것입니다. 은행은 기업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자금 지원을 해주고, 기업은 은행이 잘될 수 있게끔 꾸준하게 거래해주는 게 이상적이겠죠.”

▶국내 은행이 미국이나 유럽 은행에 비해 수익성이 낮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은행 고객 중 절반은 사실상 은행 수익 창출에 기여하지 않는 고객입니다. 단순히 예치하는 것만으로는 은행에 돌아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죠. 미국은 계좌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수수료를 청구합니다. 한국은 아니죠. 다른 수수료도 한국이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시로 은행 수수료를 깎다 보니 이렇게 된 거죠. 그렇다고 계좌유지 수수료를 갑자기 받는다거나 낮아진 수수료를 다시 올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죠. 고민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다만 은행은 수수료가 낮은 상황에서도 이익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금융산업이 더 잘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요.

“향후 금융산업의 키워드는 핀테크(금융기술)와 4차 산업혁명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신기술 관련 규제는 과도한 측면이 있습니다. 법체계로 봤을 때 포지티브 시스템이 문제입니다. 모든 것을 불가능하게 막아놓고 일부 가능한 것만 허용하는 시스템이죠.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창의적인 사람도 획기적인 아이템을 내놓기 어렵습니다. 관련 법 개정을 해서 ‘하지 말아야 할 업무’를 정하는 쪽으로 전환이 필요합니다.”

▶관심을 두고 있는 4차 산업혁명 분야는 어떤 것입니까.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빅데이터라고 봅니다. 그런데 소비자보호 이슈 때문에 활성화되는 데 한계가 있는 상황이죠. 과거 개인정보유출 사태 때문에 관련 규제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금융지주는 계열사 간 자유로운 정보 공유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데 이런 규제 때문에 어렵습니다. 물론 규제는 필요합니다. 특히 은행은 더 필요하죠. 다만 신기술과 관련한 규제는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지주 회장에만 전념하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은행장에 걸맞은 인물이 나온 게 첫째입니다. 임용택 전북은행장과 송종욱 광주은행장은 각 은행을 이끌 최적의 최고경영자입니다. 또 JB금융을 새로운 궤도에 올리기 위해 스스로 앞장서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디지털 금융입니다. 두 은행장에겐 바쁜 일상 은행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저는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연구할 겁니다. 지방은행의 틀을 깨고 넓은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디지털 금융 사업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있습니다.”
■ 김한 JB금융 회장은△1954년 서울 출생 △경기고,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 경영학석사 △동부그룹 미국현지법인 사장(1984~1989) △대신증권 이사(1989~1993) △금융감독위원회 기업구조조정 위원(1998~2000) △메리츠증권 대표이사 부회장(2004) △국민은행·KB금융지주 사외이사(2008~2010) △전북은행장(2010~2014) △JB금융그룹 회장(2013~), 광주은행장(2014~2017)

정리=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