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물부터 김치까지"…절대미각 '달인들의 집합소' 어디?

LG전자 창원R&D센터를 가다
워터소믈리에부터 레시피 전문가, 김치 연구가까지…
LG전자 창원R&D센터에는 다양한 조리기기들을 갖춘 요리개발실이 있어 연구원들이 전 세계의 다양한 요리들을 직접 조리하며 제품에 적용할 레시피들을 개발한다. LG전자 연구원이 피자 전용 화덕을 사용해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 (자료 LG전자)
"대학에서 식품영양학과 전공했습니다. 식영과 나와서 전자회사 다닌다니 좀 특이하긴 하죠." (레시피 전문가 박소영 LG전자 선임연구원)

연구원이지만 하얀 가운을 입지도, 에어샤워를 하는 클린룸을 거치지도 않는다. 연구원들이 편안하게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곳'. 경남 창원시 LG전자 창원1사업장에 위치한 창원R&D센터를 지난 6일 다녀왔다.창원R&D센터는 냉장고, 정수기, 오븐레인지, 식기세척기 등 주방가전 제품들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곳으로 최근 준공됐다. LG전자가 전세계 약 170개국에 공급하는 주방가전들이 모두 이곳에서 개발된다. 주방 가정이다보니 연구실 곳곳은 집안을 옮겨놓은 모습이었다.

14층 요리개발실은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고소한 냅새가 풍겨나왔다. 화덕, 상업용 오븐, 제빵기, 야외용 그릴 등 다양한 조리기기들에서 쿠키나 인도의 난, 스테이크 등이 요리되고 있었다. 연구원들은 조리법을 개발하고 제품에 탑재할 수 있도록 최적화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박 연구원은 "이 곳에서 개발된 레시피는 디오스 광파오븐과 같은 요리 가전에 탑재된다"며 "제품이 기본으로 탑재한 130개 조리 코스 외에 스마트폰의 전용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내려 받을 수 있는 142개 코스를 추가하면 누구나 손쉽게 총 272가지의 요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예를 들어 중동 지역으로 수출하는 제품을 위해 케밥을, 인도로 공급하는 제품을 위해 난을 조리하는 레시피를 연구하고 제품에 적용한다. 최근 미국에 내놔 '히트'친 상품은 수비드 조리가 가능한 오븐쿡탑이다. 수비드(프랑스어: sous-vide)는 밀폐된 비닐 봉지에 담긴 음식물을 미지근한 물 속에 오랫동안 데우는 조리법이다. 최근 천천히 요리하는 '슬로쿡' 열풍과 함께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요리법이다. 이 또한 레시피를 연구하면서 얻은 결과물이다.
경남 창원시에 위치한 LG전자 창원R&D센터에는 레시피 전문가, 김치 연구가 워터 소믈리에 등 이색 업무를 하는 연구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왼쪽부터) 레시피 전문가 LG전자 박소영 선임연구원, 김치 연구가 LG전자 김은정 책임연구원, 워터 소믈리에 LG전자 이병기 선임연구원 (자료 LG전자)
◆워터 소믈리에 "눈 가리고 물 종류 압니다"…김치 연구가 "김치만 수백 트럭"

LG전자의 대표적인 주방가전으로는 '정수기'가 있다. 개별 정수기는 물론이고 정수기가 달린 냉장고, 얼음정수기 냉장고 등 파생된 제품도 많다. 이 '물 맛'을 감별하는 이병기 선임연구원은 한국수자원공사가 자격을 인정한 물 감별 전문가다. 정수기BD(Business Division) 정수기QE(Quality Engineering)파트에 근무하고 있다.이 연구원은 정수기에서 나오는 물의 맛과 품질을 평가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정수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물맛이나 냄새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다. 수질과 관련한 불만이나 문의가 들어오면 직접 고객을 찾아가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설명해준다. LG전자의 제품이 세계적으로 수출되면서 이제는 '세계 물맛'까지 보고 있다.

그는 "에비앙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물은 무거운 맛(경도)이 강하고 우리나라 삼다수 같은 물은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라며 "각국이 선호하는 물 맛도 그만큼 다르다보니 제품에도 반영되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물의 달인 수준이다. 눈을 가리고 물 맛을 보면, 어떤 물 종류까지인지도 맞히는 수준이 됐다.

김치가 발효되는 소리를 담았던 광고가 있었다. 바로 LG전자의 김치냉장고인 '디오스 김치톡톡'광고였다. 막걸리가 발효될 때 나는 소리에서 영감을 얻어 '김치에도 이런 소리가 있지 않을까'하고 연구를 시작한 이가 김은정 냉장고RD/ED(Research/Engineering Division) 책임연구원이다.김치 맛을 전담하다보니 '김치의 달인'으로 불린다. 김 연구원은 김치 숙성을 연구하기 위해 청국장, 취두부(중국식 발효두부), 요구르트 등 전 세계의 발효 식품들도 참고했다. 김 연구원은 김치냉장고가 김치를 가장 맛있는 상태로 발효시켜 보관하는 적정 온도를 찾아내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알고리즘도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사용한 김치만 수백 트럭이다.

그는 "냉장고의 본질은 식품의 보관이고, 이러한 식품에 대한 이해와 본질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LG전자는 김치냉장고를 국내 최초로 개발한 만큼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청와대에서 LG전자의 김치냉장고 최초 모델인 1984년식과 2018년 모델을 전시한 일화를 들며 "제품 개발에서 시작해 이제는 우리나라의 김치문화를 알리는 일까지 하고 있다"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2018년형인 'New 유산균김치+' 또한 김 연구원의 작품이다. 자체 실험 결과에 따르면 이 기능은 김치의 신맛을 내는 유산균은 억제하고 시원하고 깔끔한 맛을 내는 유산균을 2주 만에 일반 보관모드 대비 최대 57배까지 늘려준다. 김치가 맛있게 익어진 상태를 최장 3개월까지 보관해준다.
LG전자 연구원들이 3D프린터로 만들어낸 냉장고 부품을 살펴보고 있다. (자료 LG전자)
◆ 시료보관실, 지하에 750대의 주방가전 보관

이 밖에도 창원 R&D센터 지하 1,2층에는 냉장고, 오븐, 식기세척기 등 주방가전의 시료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일반적으로 대형 건물의 지하에는 주차장이나 기계실이 자리잡고 있는 것에 비하면 이색적이다.

시료보관실은 연구원들에게 도서관과 같은 곳이다. 도서관에서 필요한 책을 빌려보고 반납하는 것처럼 연구원들은 시료보관실에 와서 언제든지 필요한 시료를 찾아서 활용할 수 있다. 이곳에 보관하는 시료의 종류만 750대에 이른다. 이 건물에서 일하는 연구원이 1500여 명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숫자다. 시료들을 수직으로 올려 세우면 약 1400m로 63빌딩 높이의 5.5배에 이른다.

LG전자는 주방가전 연구소를 통합하기 전에는 각 제품을 담당하는 연구소에서 개별적으로 시료를 관리했다. 이번에 창원R&D센터에 시료들을 통합해서 보관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을 확보했다. 전체 보관 규모는 기존 대비 50% 더 커졌다.

4층에는 3D프린터실이 자리잡고 있다. 4대의 3D프린터가 로봇 팔을 미세하게 움직이며 개발 단계의 제품 모형들을 만들어낸다. LG전자는 2014년 개발 부품의 모형을 제작하는데 3D프린터를 도입했다. 이 장비는 최대 높이 90cm의 모형을 만드는 등 개발에 필요한 대부분의 부품 모형을 제작할 수 있다. 장비 도입 전과 비교하면 모형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약 30% 줄었고, 비용 절감도 연간 7억원에 이른다.

개발단계에 3D프린터를 도입하기 이전에는 제품 외형을 새로 디자인하거나 신규 부품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협력사를 통해 제품 모형을 제작했다. 이 경우 제작과 수정 단계에서 시간이 오래 걸려 개발 일정 전체가 지연되기도 하고 비용도 많이 드는 단점이 있었다. 이제는 개발 제품에 대한 보안 유지가 보다 강화되고, 제품의 최적화와 완성도에 소요되는 시간이 짧아졌다는 게 LG전자의 설명이다.
지난 달 열렸던 LG전자 창원 R&D센터 준공식.
LG전자의 창원R&D센터는 국가별 혹은 지역별로 다양한 형태를 갖는 주방 공간, 고객들이 주방 공간에서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패턴, 다양한 융복합 기술 등을 연구한다. 개발된 프리미엄 주방 가전은 경남 창원을 비롯한 중국, 폴란드, 베트남, 멕시코, 인도 등 각 지역별 거점에서 생산돼 전 세계 고객들이 사용하게 된다.

LG전자가 2015년 3월 착공한 창원R&D센터는 1500억 원을 투입해 2년 반 만에 완공됐다. 연면적 약 5만1000㎡에 지상 20층, 지하 2층 규모 건물로 창원국가산업단지 내 연구시설로는 가장 크다.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LG전자는 주방가전의 성능뿐 아니라 감성 품질을 높이는 데에도 각별히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