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탐구] 서기봉 농협생명 사장 "새 회계기준 대비하려 새참 영업도 했죠"

내실경영 앞장 서는 '보장성보험 전도사'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지난 3일 아침 서기봉 농협생명 사장 비서실에 몇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날 밤 서 사장과 함께 저녁 자리를 한 설계사들이었다. 그들은 “사장님 괜찮으시냐”는 질문을 한결같이 쏟아냈다. 저녁 자리가 밤 늦게까지 이어진 다음날에서야 서 사장이 술을 한 잔도 못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어서다.

서 사장은 농협생명 안에서 ‘술 못하는 주당’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체질적으로 술을 못한다. 한 잔만 마셔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기도 하고, 심지어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여러 번이다.하지만 서 사장이 술을 못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최근 3~4년 사이 일이다. 임원이 되기 전까지 철저히 ‘주당’으로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노력 덕이다. 공부까지 해가며 외운 유머로 저녁 자리에서 분위기를 이끌어갈 수 있다면 다행이었다. 적은 주량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고객이나 상사 앞에선 전략적으로 술을 먹고 ‘전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아”, 직원 이름 부르는 사장

서 사장은 올 1월1일 농협생명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했다. 서 사장은 취임 뒤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술을 못 마셔서 겪은 고충을 알기 때문에 술잔을 먼저 권하지 않는다. 강압적인 지시로는 조직과 장(長)의 권위가 설 수 없다고 믿어서다. 부하직원을 시종일관 직함이 아니라 이름으로 부르는 원칙도 세웠다. “직원이 사장을 좀 더 편하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면 좋겠다”는 이유에서다. 보고를 위해 들어온 직원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질책하지 않는다는 기준도 만들었다. 미흡한 보고에 대한 평가는 “많이 바빴나 보다. 이 부분 한 번 더 보지 그래”라는 정도에서 끝난다.

서 사장이 이 같은 원칙을 세운 것은 무엇보다 직원의 가감 없는 의견을 듣고 싶어서다. 서 사장은 직원이 사장에게 편하게 회사 돌아가는 상황을 말할 수 있어야 평소에 생각지 못한 리스크를 점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직원과 소통이 될 때 기존에 알지 못한 정보(?)를 들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 사장은 “CEO에게 보고할 때는 팀장과 부장, 그리고 해당 임원 등 거치는 과정이 길기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듣기 힘들다”며 “해당 금융상품의 리스크는 무엇이고, 우리 회사 약점이 무엇인지 등은 직원과 편하게 얘기할 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보험회사는 상품을 만들 때 미래에 보험금이 얼마만큼 나갈 것인지를 정확히 예측해야 현재 보험료를 제대로 책정할 수 있다. 금리 추이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해야 한다. 보험사에선 당장 잘 팔린 상품이라도 훗날 손해율이 올라가 회사 수익성을 해치는 골칫덩이로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서 사장의 ‘새참 영업’

서 사장은 농협은행에서 농협생명으로 온 뒤 내실 경영에 집중하고 있다. 기존의 농협생명은 다른 국내 생명보험사와 마찬가지로 저축성보험 판매에 주력했다. 농협생명의 영업은 대부분 지역 농협을 통한 방카슈랑스(은행 창구 내 보험 판매)에 의존해서다. 보험 설계사가 아닌 은행 직원은 비교적 상품 구조를 설명하기 쉬운 저축성보험 판매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21년 도입 예정인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은 저축성보험을 매출에서 제외한다. 언젠가 고객에게 모두 돌려줘야 할 돈이라는 판단에서다. 또 저축성보험에 따른 부채를 원가가 아니라 시가로 평가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과거 고금리를 약속하고 판매한 저축성보험의 경우 회계 장부상 부채도 기존보다 더 많이 잡힌다.서 사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두 갈래 전략을 짰다. 우선 취임한 뒤 후순위채 발행을 적극 추진했다. 시장에서는 후순위채 규모가 3000억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지만 서 사장은 5000억원까지 규모를 확대해 지난 4월 발행에 성공했다. 자본 확충이 필요할 땐 마중물을 확실하게 부어야 안정적인 경영 활동이 가능하다고 판단해서다. 농협생명은 보험사의 재무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RBC)비율도 지난해 말 186%에서 지난 9월 218%까지 올랐다.

영업에선 건강보험, 암보험과 같은 보장성보험 판매에 힘을 실었다. 농협생명의 주요 고객인 지역 농민에게 보장성보험의 장점을 알리기는 쉽지 않았다. 농민들은 지금까지 만기 때 납입 보험료를 돌려주는 저축성보험에 익숙해져 있어서다. 서 사장은 ‘새참 영업’을 하면서 보장성보험 홍보에 나섰다. 서 사장은 봄·가을 농번기에는 1주일에 한 번 이상 농촌을 찾아 모심기부터 벼 수확까지 농민과 함께 일하는 대신 새참을 먹을 때 지역조합장을 대상으로 영업했다. 함께 땀 흘려 일한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었다는게 지역조합장들 설명이다. 서 사장 노력으로 신규 계약 건수 기준으로 지난해 말 33%던 보장성보험은 지난 9월 말 51%까지 올랐다.

◆농협은행 시절 금고 뺏긴 적 없어

서 사장은 농협은행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이 같은 적극성이 몸에 배어 있다. 그는 구례농업고와 농협대를 거쳐 1986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했다. 농협은행에서는 농업금융부장·공공금융부장·영업추진본부장 등을 차례로 지냈다.

서 사장은 특히 시·도 금고 영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농협은행은 전국 75개 시·도 금고 중 67개의 1금고를 맡고 있다. 지역자치단체가 시·도 금고의 1금고를 선정할 때는 여러 조건을 살핀다. 예금금리, 전산시스템 운영능력, 지자체 기여도 등을 따진다. 서 사장은 해당 지자체가 특히 어떤 부분에 관심이 있는지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고 전했다.

서 사장은 “담당 간부의 운전기사를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평소 운전기사에게 음료수나 작은 선물을 전한 뒤 간부의 동선을 파악하는 게 그의 전략이었다. 행사장에서 우연을 가장해 마주친 뒤 1~2분이라도 지자체의 관심 사항을 전해 듣기 위해서다. 덕분에 서 사장이 금고 영업을 하는 동안에는 농협은행이 다른 은행에 1금고 자리를 뺏긴 적이 없다.

◆보험 민원 해결은 윗사람부터

서 사장은 최근 들어 영업뿐 아니라 고객 민원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응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보험사가 보험계약을 맺을 때는 적극적인 반면 보험금 청구나 민원이 발생했을 땐 소극적이라는 비판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다.

서 사장은 민원 때문에 농협생명을 찾은 이를 직접 사무실로 데려와 설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 사장은 “아무리 상품에 대한 불만이 많다고 하더라도 사장이 나와서 설명하면 고객의 화가 누그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민원 고객에게는 첫 응대를 윗사람이 먼저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이 내놓은 ‘보험사 민원 현황’을 보면 채 의원이 조사한 14개 생명보험사와 9개 손해보험사 가운데 민원 불수용률이 50% 이하인 보험사는 농협생명(49.82%)이 유일했다.

서 사장은 “농협생명은 설계사뿐 아니라 방카슈랑스 상품을 판매하는 은행원도 고객과 한 지역에서 오랜 기간 얼굴을 마주치며 지내는 경우가 많다”며 “지속 가능한 영업을 하기 위해선 정확하게 상품을 설명하고 이후 민원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콜센터 체험한 서기봉 사장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바로 직원 처우개선 지시
심리치료사 고용도 검토

서기봉 농협생명 사장(사진)은 보험업계에서도 유난히 콜센터 직원에 신경을 쓰는 최고경영자(CEO)로 알려져 있다. 그는 대표이사를 맡은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1월 말 콜센터 ‘1일 상담직원’을 자처했다. 보험업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려면 직접 고객들과 접촉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콜센터를 직접 체험해 본 뒤 서 사장은 “농협생명의 200여 명 콜센터 직원들이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지 몰랐다”며 “체험을 해보니 콜센터 직원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보험사 콜센터 직원들은 어려운 보험상품 구조를 설명해야 하는 데다 보험금 청구 업무까지 맡고 있다. 콜센터에 전화를 건 고객 열 명 중 아홉 명은 이미 보험상품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짜증을 낸다는 게 직원들의 설명이다. 용어도 어려울 뿐 아니라 고객이 기존에 이해한 상품 구조와 정작 가입한 상품의 설계가 다른 경우도 많다. 고객이 상품 구조를 오해했거나 설계사가 잘못 판매한 경우다. 때문에 화가 난 고객들이 콜센터 직원에게 욕설을 하거나 협박을 하는 일도 상당하다.

최근에는 콜센터 직원 휴게실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해 혼자서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심리치료사 고용도 검토 중이다. 서 사장은 농협생명 전 임직원이 상·하반기에 나눠 1년에 두 번씩 콜센터 업무를 직접 하도록 하고 있다.

그는 “보험사 직원들도 고객들의 민원 전화를 직접 받아봐야 상품을 만들고 영업할 때 신중해진다”며 “결국 영업과 민원상담, 상품 개발 부서가 서로 간의 사정을 잘 알 때 좋은 보험상품이 나오고 불완전판매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서기봉 농협생명 사장 프로필△1959년 전남 구례 출생 △1978년 구례농고 졸업 △1980년 농협대 협동조합학과 졸업 △1986년 농협중앙회 입사 △2009년 공공금융서비스부 단장 △2012년 농협은행 농업금융부 부장 △2014년 기관고객부 부장 △2015년 공공금융부 부장 △2016년 부행장 △2017년 1월~ 농협생명 대표이사 사장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